규제로 출점도 못하는데…유통업계, 일자리 못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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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채용 시즌에 들어선 유통 대기업들의 속내가 복잡하다. 정부 일자리 정책 기조에 부합하기 위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인력 채용을 예고했지만 신규 출점이 제한된 데다 부진한 업황에 인건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채용 규모를 늘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이달 6~23일 하반기 신입 공개 채용에 나선다. 유통 부문 9개사도 그룹 공채를 통해 인력을 모집한다. 롯데는 올해부터 정확한 채용 규모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내외 경영 여건 악화 속에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당초 롯데는 올해 전년보다 10% 늘어난 1만3000명 이상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규모는 사실상 예년 수준을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 복귀와 맞물려 향후 5년 동안 7만명을 채용하겠다는 청사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유통 부문에서 전체의 61%인 4만2600명을 뽑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극심한 업황 침체와 각종 영업 규제로 말미암아 일자리 창출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에서다.

아직 채용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신세계그룹은 대졸 신입 공채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신규 출점이 제한된 상황에서 새로 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SSG닷컴 등 경력직 위주의 수시 채용에 힘을 쏟기로 했다.

지난해 채용 규모를 50% 늘린 현대백화점그룹도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는 선에 그쳤다. 지난해 대졸 인턴 사원 공채를 진행한 홈플러스도 올해는 수시 채용만 진행한다.

유통업은 점포를 출점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가 사업 효율화를 위해 기존 점포를 폐점하고 출점은 포기하면서 고용 확대가 쉽지 않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물론 백화점 3사 역시 올해 신규점 출점이 전무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유통 산업 정책은 여전히 규제 일변도로 점철돼 있다. 신규 출점을 위축하는 상생협약과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은 가뜩이나 실적 부진으로 신음하고 있는 유통 대기업에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이들 기업의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일자리 창출 상위 5개사 가운데 3개 업체가 유통 기업이다. 30대 그룹 가운데 종업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도 이마트다.

유통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산업이다. 유통업의 고용 비중은 14.2%로, 전체 사업 평균의 3배에 이른다. 백화점이 출점할 때마다 1600여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대형마트도 180여명 고용을 유발한다. 최근 문을 연 스타필드시티 부천과 롯데몰 수지도 각자 2000여개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대기업 영업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만 10개 이상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한경연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 해 최대 3만5706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내다봤다. 유통업 규제가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삐를 죄는데 무턱대고 일자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상생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산업 자체가 위축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