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했지만, 가전업계 반응은 차분하다. 이미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 발표 이전에 공급망을 점검했고, 일본산 비중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5일 복수 가전 제조사 관계자는 “화이트리스트 발표 직후 긴급회의 소집이나 별도 조치는 내리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2일 오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본발 소재·부품 품귀현상을 우려, 협력사에 재고를 추가 확보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전 분야는 한 발 비켜섰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첨단, 정밀기술이 적용되는 반도체, 스마트폰과 달리 가전 제조라인에는 일본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평가다.
본지가 접촉한 복수의 생활가전업체 최고경영자는 “가전은 이번 사태에서 한 발 떨어져있다”이라면서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은 없거나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견가전사 한 관계자는 “현재 전사 휴가기간이다. 고위급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면서 “중국 현지공장에서 물건을 조달하는 비중이 커 일본 영향이 극히 작다”고 답했다.
다른 생활가전사 관계자도 “가전 부품은 대부분 국산화가 완료됐다. 일본산을 쓰고 있더라도 유사시 중국 등지에서 대안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가전업계와 일본 산업계 간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냉장고에는 일본에서 특수 가공한 세라믹 부품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BLDC 모터, 정밀 센서, 공조장치 부품을 일본에서 조달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 부분품을 공급받는다는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 현지 공급사에서 납품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조달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현지 거래처와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오는 7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정식 공표하면서 규제안에 어떤 품목을 추가할 지가 변수로 떠오른다. 수출 규제 범위는 일본 정부 해석에 따라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전략물자라 하더라도 캐치올 제도를 활용해 규제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업계에서도 일본산 소재·부품에 대한 공급 다변화에 나설 전망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일본이 비전략물자 품목도 우려용도로 수출된다고 보는 경우 통제 가능하다. 이 점이 사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서 “만약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대거 규제하면, 일본 수출기업은 일본 정부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