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박사의 4차 산업혁명 따라잡기]<5>비정상 환경을 돌파할 수 있게 한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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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확대하거나 정치사회적 필요를 더 이상 충족시키기 어렵게 된 비정상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생산성을 올릴 신기술이 필요하다.

18세기 초반 모직 산업을 붕괴시킨 인도산 면직물에 대항해 영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질 좋은 면직물을 값싸게 생산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천을 짜는 플라잉 셔틀(1733년), 스피닝 제니(1764년)가 발명된 데 이어 1769년 아크라이트가 수차를 이용해 가늘고 질긴 면사를 생산할 수 있는 방적기를 발명했다. 그러나 수차는 계절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가 산간지역에만 설치할 수 있었으므로 섬유산업을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뉴코먼의 증기엔진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엔진(1775년)이었다. 1779년 증기엔진으로 운전하는 방직기가 개발됐으며 1790년 대형 직물공장이 세워졌다. 효율이 개선된 증기엔진 덕분에 노동력이 풍부한 도시 지역에 직물공장을 세울 수 있게 돼 섬유산업이 번창했다. 새로 발명된 섬유기계를 효과적으로 동작시킬 수 있는 증기엔진이 있었기에 섬유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증기엔진이 섬유산업과 함께 1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이유이다.

섬유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경제를 다양하게 만든 것은 전기였다. 전기가 산업에 본격 사용된 것은 1870년 이후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1830년대 변압기와 스위치, 직류 발전기가 개발됐으며 1850년 교류 발전기, 1855년 교류 전기가 실용화됐다. 발전소 건설, 장거리 송전기술, 모터기술, 전기기기 등 발명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면서 전기가 빠르게 보급됐다. 전기는 그을음 없는 밝고 깨끗한 조명 환경을 제공해 사람의 활동시간을 늘리고 야간작업 생산성을 높였다. 1880년께 트램(노면전차) 개통으로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어 도시가 확대됐다. 1890년 이후 인쇄, 고무, 화학, 1차 금속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전기화됐고 산업이 가속 발전했다. 즉 전기는 먼저 생활환경을 바꾼 다음 1890년이 되어서야 산업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전기는 1900년 초반 때마침 자리잡기 시작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운용하는데 적합했으며 이는 2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축인 대량생산 체제 기반이 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전자기학, 핵물리학 등 물리학 분야에 많은 진보가 있었다. 무선통신,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이 1900년 전후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1940년대 말 반도체가 발명되면서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디지털 세상이 열렸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의 감각이나 근력(운동)에 의존하는 대량생산 체제를 사람이 하던 역할을 자동으로 운전되는 기계로 대체한 자동화된 생산체제로 바꾸었으며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였다. 디지털 기술은 전자산업을 일으켰고 모든 산업에 녹아들어가 당초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자신들이 구축한 자동화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후발 산업국과 경쟁해야 하는 선진국이 내놓은 대안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화된 생산체제다. AI, 빅데이터, 초고속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3D프린팅 등 기술을 융합해 자율 생산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는 자동화 기능을 자율화 기능으로 대체하는 생산수단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 이슈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사회 전반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향후 세계 질서가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력 경쟁이 아니라 사회경제 이슈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형태로 재편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치밀한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새로운 생산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알아본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jkpark@nanotech202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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