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시황 악화·한일 갈등까지 불확실성 커져 최소한만 진행
삼성전자가 신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인 평택 P2 설비 투자 시기를 내년으로 미룬다. 당초 올 하반기에 예정돼 있던 투자가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반도체 시황 부진과 미-중 무역 분쟁, 한-일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겹친 여파다.
삼성전자 P2 투자는 장비·소재를 망라해 반도체 후방산업계가 손꼽아 기다려 온 투자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보릿고개'를 넘길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투자 보류로 전망이 어두워졌다.
23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평택 P2 설비 투자를 내년 1분기로 연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장비업계 고위 관계자는 “하반기에 예정한 P2 장비 발주가 내년 초로 넘어갔다”면서 “메모리 시황 악화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도 “삼성전자가 P2 장비 발주를 내년 1분기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공장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장비만 발주하는 등 최소한의 설비 투자만 진행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P2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초부터 건설을 시작한 신규 메모리 팹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평택 1공장(P1) 이상 규모를 갖춘다는 목표로 지난해 첫 삽을 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황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맞춰 2010년께부터 공장을 먼저 건설해 놓는 투자 전략을 펴 왔다. 클린룸을 마련해 놓고 장비를 들여 적기에 품목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P2 공장 건설도 이 같은 관점에서 진행됐다.
삼성전자가 P2 건물을 올 상반기까지 준공하기로 함으로써 본격적인 장비 발주가 하반기에는 시작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그러나 반도체 시황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삼성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상반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국내 메모리 제조사의 재고 수준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3~4개월치 안팎의 물량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지속되고 최근 한-일 간 무역 갈등까지 더해져 불확실성이 커진 게 투자 연기 배경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메모리 가격이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수요 회복 때문이라기보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에 따른 반도체 수급을 우려한 불안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면서 “시장 수요가 회복될 신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삼성이 투자를 연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삼성이 내년 1분기 투자를 예고했지만 실제 발주는 더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을 겨냥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확대되고 한-일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