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 첨단화학소재 분야를 이끈 '모노츠쿠리(장인정신)'가 밑바탕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모노는 물건, 츠쿠리는 만들기라는 의미로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들 숙련공을 집중 육성, 밸류체인을 지원해 관련 시장 점유율을 높여 왔다. 우리나라가 단기에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이와 같은 전략을 차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매해 발간하는 모노츠쿠리 백서를 보면 때마다 바뀌는 핵심 주제와 달리 '인재 확보 및 육성' 목표는 경제 상황에 맞춰 조정되고 있다.
일본이 인적 자원을 중시하는 것은 화학, 반도체·디스플레이, 배터리, 자동차 등 대다수 산업에 필요한 첨단화학소재 분야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실제 화학 소재는 공정이 복잡해 숙련공이 대거 필요하다. 일본 정부와 산업계는 이들을 종신 고용해 기술 발전과 승계를 보장한다. 앞서 일본은 한국·중국에 조립·가공에서 밀린 이후 원재료를 배합, 공정하는 첨단화학소재 개발에 집중해 온 바 있다.
대표적으로 편광판 세계점유율 1위 닛토덴코는 1918년 전선 피복 테이프 생산으로 출발했으나 점착이라는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1980년대 편광판 분야 독점 시대를 열었다.
탄소섬유 세계 1위 도레이(Toray)도 1970년대부터 제품을 지속 개량해 1989년 보잉777기, 2012년 보잉 787에 잇달아 구조재를 채택시켰다.
이런 결과로 일본은 대부분 산업에 들어가는 첨단화학소재 분야 세계 반열에 올랐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감광재), 반도체 봉지재 세계 시장점유율은 90%를 넘겼다.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액정편광판 보호필름 100%, 반사방지 필름은 99%에 이른다. 반도체용 차단재(78%), Pan계 탄소섬유(63%), 수처리막(63%), 액정편광판(58%), 액정디스플레이 글라스(50%) 등도 과반을 상회한다.
일본은 밸류체인간 유기적 협력을 추구한다. 소재업체들은 제품개발 초기부터 고객과 같이 참여하는 ESI(Early Supplier Involvement·조기공급자참여) 전략을 구사한다. 완제품 업체들은 구매 약속을 한 후 기술과 자금을 지원한다. 수출할 때는 현지 종합상사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숙련공들을 보면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전문성을 갖췄다”며 “이들이 첨단화학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정부 밸류체인 지원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업체들의 경우 한 번 일본 소재를 채택하게 되면 거래처를 바꾸기 쉽지 않다”면서 “이런 식으로 의존하다보니 일본 첨단화학소재 점유율이 견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첨단화학소재 분야 일본 의존을 낮추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전문 인력 육성, 산학연 협력 강화 등을 카피캣(모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대학 화학소재 관련 학과와 인력 지원을 강화하고 R&D 인프라를 확충해 산학연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소재 개발 단계부터 구매 기업이 공동 투자나 기술협력을 하고 개발 소재 우선공급권을 지급하는 상생협력 구도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지용 동국대학교 파라미타칼리지 교수는 “정부는 장기 관점에서 정책 기술개발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며 “최소 10년 이상 개발기간을 보장하고 이 기간 동안에는 행정 간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