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R&R 재정립]<에필로그>

전자신문은 이번 '출연연 R&R 재정립' 시리즈를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새로 정립한 역할과 책임(R&R)을 조명하고 이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수입구조 포트폴리오 추진현황을 살펴봤다. NST와 출연연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8대 핵심 과제를 설정하고, 각 핵심 과제별로 중심 역할을 맡을 출연연과 주요 과제를 정리해 냈다.

이번 출연연 R&R 재정립은 출연연이 국가연구개발의 핵심주체로 재탄생할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비록 정체된 출연연을 단번에 뒤바꾸지는 못해도 PBS라는 문제의 한 축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입구조 포트폴리오는 출연연 정체 논란이 일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개선하면서 안정된 출연금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도 R&R에 이어 수입구조 포트폴리오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리즈를 위한 출연연 현장 취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우선 타부처 R&R 예산을 과기정통부 산하기관 출연금으로 전용하는 것은 과기정통부나 출연연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과기정통부는 당사자인 출연연이 타당성을 강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줄 것을 원했고, 숙제를 떠안은 출연연은 가장 민감하면서도 골치 아픈 사안으로 여겼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이번 출연연 R&R 재정립 효과 극대화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과제 중장기화가 가장 큰 성과

이번 출연연 R&R 재정립은 모든 출연연의 운영과 연구계획을 세밀화하고 장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5년에 그친 기존 단기 과제 중심에서 10~15년까지 이어갈 연구방향과 세부과제를 도출했다.

25개 출연연은 '해야 할 역할'을 다시 세웠다. 그동안 PBS 과제 유치에 매몰돼 모호해진 역할을 재확립하고, 국민 혈세를 사용하는 연구기관이 짊어져야 할 '책임'도 돌아보았다. 국민생활문제, 국가임무 해결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주요 역할에 담았다. 보여주기식 얕은 성과창출이나 단순 인건비 확보를 위해 추진하던 1~2억원 규모 단순·단기과제는 감히 없앴다. 그 자리에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중장기 과제로 채우도록 했다.

기관별 상위역할과 주요역할에 장기 시각의 프런티어 연구 수행 목표와 계획도 전면에 포진시켰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초고속 미래 교통 시스템(HTX) 연구를 첫 번째 주요 역할로 제시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발명'에 방점을 찍은 연구를 표방하면서 초성능 분야 상위역할을 추가하기로 했다.

다만 지난 수년 동안 출연연이 자체 마련해 온 혁신의 결과는 많이 담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은 지난 2017년 '출연연 자기주도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출연연은 프런티어 연구기획 책임자(FPD) 제도 도입, 최저성과기준미달성 연구인력 엄정 조치, 연구부정 온정주의 차단, 연구성과 보상체계인 풀링제도 확대·정착 등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R&R 내용에는 일부 내용만 곁가지로 담아내는데 그쳤다.

오랜 기간 출연연에 몸담은 한 고위관계자는 “출연연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역할을 다하려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연구에 힘써야 하지만, 대부분 출연연 R&R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다른 기관에 R&R을 보완하라 말라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수입구조 포트폴리오는 진해 중

수입구조 포트폴리오는 아직 미완이다. 정부에서도 오는 2023년까지 완성한다는 방침으로 출연연이 제출한 계획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출연연에서 타부처 수탁과제 예산을 이관하거나 정책지정화를 요구하면 과기정통부가 이를 토대로 해당 부처를 설득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출연연은 부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 원하는 수준의 출연금 확대를 요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안정재원 확보를 지원해 원활한 R&R 수행을 지원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산업통상자원부나 국토교통부 등 타부처 R&D 수탁비중이 높은 기관일수록 수입구조 포트폴리오에 이런 요청을 담아내지 못했다. 과제 이관과 정책지정 요청은 전체 수탁과제의 10% 수준에 그쳤다.

일부 출연연에서는 “개별 연구기관이 정부 부처를 상대로 '예산을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각 출연연에서는 출연금 순증이나 타부처 과제 이관 모두에 대해 '어짜피 해도 안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면서 “애초에 개별 연구기관이 정부부처에 예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부터 넌센스”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리즈를 접하면서 정부와 NST도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포트폴리오 계획과 예산을 연계한다는 방침으로 출연연별로 나눠 순차 진행하던 포트폴리오 계획 확정 절차는 잠시 중단했다.

한성일 과기정통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출연연과 다른 부처가 공감할 수 있는 수입구조 포트폴리오 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다른 부처에서 타당한 과제 이관이나 정책지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설득하고 협의해 관철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5개 정부출연연의 현재 출연금 비중은 평균 53.9% 수준이다. 수입구조 포트폴리오 계획을 짜면서 지금까지 내놓은 안은 이를 평균 60.8%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존 PBS 개산안에 담겨진 수치에도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예산 및 주변 환경 감안한 R&R 재수정 필요

출연연 R&R 정립은 예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국가에서 꼭 필요한 연구라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추진해야 한다. 반대로 꼭 필요하지 않은 연구라면 혈세를 투입할 이유가 없다. 이번 출연연 R&R은 이를 한번 정리했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최근 산업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일본이 경제보복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재계에서는 이들 핵심 소재·부품을 비롯한 전략산업분야 기술 국산화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출연연 입장에서는 뭐가 시급한 연구분야인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참에 출연연 R&R에 외국 의존도가 높은 전략산업 분야 기초기술 개발을 장기 과제로 추가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실제로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최근 일본 이슈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NST 내부에서도 출연연별 혁신과 급박한 연구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광연 NST 이사장도 “지난 1년 동안 25개 출연연이 해야 될 연구와 하지 말아야 할 연구를 확실히 정하는 지난한 작업을 마쳤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R&R은 '롤링 플랜'으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NST는 앞으로도 각 기관을 도와 R&R을 발전시켜 나가고 상황에 맞는 변화를 가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출연연 기관별 출연금 현황 및 희망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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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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