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산 불화수소 대체재 확보를 위해 작년부터 소재 업체와 협력해 국산화를 추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우리 정부를 압박할 의도로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자 선제적으로 대비를 해온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난 4일부터 시행된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가 그동안 준비한 대책으로 여파를 상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반도체 핵심 소재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장기적 연구개발(R&D) 지원과 함께 대·중소기업 간 협업이 과제로 부상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소재업체 A사 등과 함께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지난해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일시 중단하는 등 핵심 반도체 소재를 무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소재업체와 다각적 협력을 모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의 경우, 반도체 공정 중 잔류물 등을 제거하는 박리액,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식각액, 유무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세정액 등을 만들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용 화학 소재 분야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추진했다. 남은 것은 실제 공정에 사용할 수 있는 지 검증하는 절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소재 하나만 바꿔도 수율이 급변할 수 있다”며 “최근 러시아가 고순도 불화수소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실제 공정에 도입하려면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라고 밝혔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서 회로의 모양대로 깎아내는 '식각'과 식각 후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 공정에 쓰인다.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핵심 소재여서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고순도 불화수소를 스텔라, 모리타 등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만약 국산화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둘 경우, 일본 수출 규제의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물론 당장 일본 소재의 전량 대체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일본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산 소재 상용화를 위해 반도체 제조업체와 국내 소재 기업 간 협력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 분야 교수는 “삼성과 같은 소자 업체들이 고품질 소재로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난 20년간 국내 기업 육성을 등한시 하고 '1등 실용주의'만 추구하다가 지금 위기에 놓인 것”이라며 “국내 소재 수준이 부족하더라도 대기업에서 테스트 등을 지원하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중장기 차원에서 핵심 소재 국산화를 위한 R&D 지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추가경정예산에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예산 증액 등이 논의 중이지만, 핵심 소재 개발은 길게는 수십년이 걸리는 만큼 꾸준한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는 그동안 소홀히 해 왔던 핵심 소재 국산화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며 “추경 예산 확대 등 단기적인 대증 요법보다는 장기간 흔들림 없는 소재부품 국산화 추진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함봉균 정책(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