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계기로 우리 산업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와 함께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도 촉구했다. 일본 규제 조치 발표 이후 문 대통령의 직접 대응 발언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무역은 공동 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 온 자유무역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4일부터 단행했다. 수출 규제가 삼성, SK, LG 등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기업도 초비상 사태를 맞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세계 공급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면서 “상호 호혜적인 민간 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 기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청와대는 직접 대응을 자제하며 '전략적 침묵'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 조치를 정치·외교 문제 등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기업과 함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 대응과 처방을 마련하는 한편, 중장기 안목으로 수십년 동안 누적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상황 진전에 따라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 대응 체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선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고 예산·세제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 핵심도 부품, 소재, 장비의 국산화 등 경쟁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이번 주 부품·소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 대책도 발표한다. 이를 통해 대외 의존형 산업 구조를 단계적으로 탈피한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을 향해 '한마음 대응'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경제력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는 경제 강대국”이라면서 “여야 정치권과 국민께서 힘을 모아 줘야 정부와 기업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철회돼야 한다고 재차 밝혔다. 홍 부총리는 “우리 업계,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공조를 통해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할 것”이라면서 “우리 기업 피해 최소화, 대응 지원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우리 기업은 물론 일본 기업, 나아가 글로벌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 대립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정부의 양자 협의 요청에 만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8일 “지난주 일본이 양자 협의 요청에 당장 응하긴 어렵지만 만날 의사는 표명해왔다”며 “시기, 참석자, 의제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일 공문을 통해 일 경제산업성에 양자 협의를 제안했다. 지난 4일에는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일본 수출제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일본은 한국이 이미 제안한 양자 협의에 조속히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 경제산업성이 양자 협의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취재 변상근 기자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