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해 '글로벌 벤처 클러스터'를 조성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8일 복수의 대북 전문가, 벤처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벤처 클러스터는 육로를 통한 동북아시아·유럽 시장 진출을 꿈꾸는 일본 기업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최근에서야 회복세로 돌아섰다. 일본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국가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통 제조 기반의 경제 구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벤처 생태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러시아 혁신위원회는 지난해 우리 벤처기업협회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미국과 중국도 눈독을 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G2(미국·중국) 일원으로 세계 경제 체제가 아시아 중심으로 전환되는 데 동참할 수밖에 없다. 기술 창업에 사활을 건 중국은 태평양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글로벌 벤처 클러스터를 활용할 수 있다.
조성 지역에 대한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개성공단이 가장 유력하다. 800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가 이미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간 협업 공간에 기술 교육센터, 아파트형 공장, 종합 지원센터 같은 기반 인프라도 갖췄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스타트업이 참가하는 대규모 혁신 단지로 발돋움시킬 수 있다. 올해 초 남북 스타트업 협력 운영포럼을 구성했다.
비무장지대(DMZ), 경기 북부도 후보군에 올랐다. 남북경협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지로 꼽힌다. 미국과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기술이 10% 이상 적용된 제품은 북한에서 쓸 수 없다.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반입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북한이 자신들 인력을 국내로 내려 보낼지가 관건이다.
평양 주변이나 제3 지역도 검토 대상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평양과 고속도로로 연결된 남포를 선호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약 2시간 더 이동해야 하는 개성공단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중국, 러시아, 동남아도 유력 선택지 가운데 한 곳이다. 과거에도 중국 단둥, 베이징 일대에서 남북 간 협업이 이뤄진 바 있다. 북한 인건비는 베트남 대비 약 50% 낮다. 소프트웨어(SW) 분야 역량은 중국, 베트남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어가 같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 같은 구상이 현실화되면 통일 시대도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된다. 서로 다른 문화차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 긴장 국면 타개에도 도움이 된다. 글로벌 벤처 클러스터에 평화 관련 국제기구를 유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도 높일 수 있다. 북한 경제가 활발해지는 만큼 통일 비용도 줄어든다.
김흥광 NK 지식인연대 대표는 “북한의 폐쇄성과 국제 사회 제재로 국민이 바라는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사람이 먼저 교류, 생각 차이가 좁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