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사의 디지털보]<11>디지털 시대의 숙련성?

Photo Image

어둠 속에서 아들은 글씨를 쓰게 하고 자신은 떡을 썰어 보임으로써 교육을 했다는 한석봉 어머니의 일화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방법을 지금 시대에도 칭송하는 것은 시대착오란 의견이 많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창의성이지 반복연습에 의한 기능 향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석봉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었지 뛰어난 문장가는 아니었다. 관직에서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한석봉을 폄하해서 글씨 잘 쓰는 '차트병'이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마저 있다. 어둠 속에서도 글씨를 똑바로 쓸 수 있는 종류의 '기능 연마'가 디지털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님에도 '숙련성'이 왜 여전히 중요한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평가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분야는 체조다. 체조 경기 평가는 크게 독창성, 난도, 숙련성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체조 기술을 창조적으로 구상해 독창성 있게 펼쳤는가는 교육 현장이나 기업에서 강조하는 창의성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창의적 작업이 그러하듯 후발주자에 의해 반복되면 독창성은 사라지게 된다. 기술의 난도 또한 선수 간에 기량이 비슷하게 발전하기에 '위험감수'와 '위험회피'의 전략적 판단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국 체조 평가는 나머지 하나인 숙련성을 어떻게 달성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같은 드가체프 기술을 누가 더 숙련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Photo Image

숙련성은 엄격한 의미로는 '동일한 방식'의 일을 실수없이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 의미의 숙련성은 주어진 업무를 '동일한 방식' 여부를 떠나서 얼마나 빨리 실수없이 완결하느냐로 이해할 수 있다. 숙련성에는 시간과 품질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오류없이 높은 품질로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단순 반복의 결과라는 일반적 생각과 달리 숙련성은 창의성과 난도에 선순환 고리를 제공한다. 특정 과업을 실수 없이 숙련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처리 방법을 개선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반복의 능숙함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처리능력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난도 역시 수행 시마다 실패가 발생할 확률이 크면 더 쉽고 안정된 방법을 찾게 된다. 결국 숙련성이 혁신의 출발점이 된다. 익숙치 않아서가 아니라 아무리 익숙해져도 더 이상의 효율이 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는 뜻이다.

숙련성은 수행 성과의 시계열적 향상보다 다른 대상과 직접 비교함으로써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리더가 갖추어야할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가 업무에서 팀원 숙련성을 가늠하는 일이다. 특정 업무는 특정 팀원만 수행하는 경우처럼 비교 대상이 없어서 객관적인 숙련성 평가가 쉽지는 않다. 그렇기에 업무를 순환시켜서 전임자와 후임자를 비교해 보는 방법, 비슷한 일을 하는 타 회사 담당자와 비교하는 방법, 해당 업무를 리더가 직접 경험하면서 평가해 보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숙련성을 검증해야 한다.

Photo Image

콜센터의 디지털 전환이 유독 힘든 이유는 상담업무 숙련성이 기계적 평가에서 멈추고 있기 때문이다. 안톤 교수에 의해 정립된 CPH(시간당 응대콜), AHT(콜당 평균 응대시간) 같은 정량적 지표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십 년이 흘러왔다. 혁신 역량을 가진 인력이 직접 상담업무를 하면서 기계적 능숙함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경험해야 디지털 기술을 결합시켜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다. 드가체프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기술로 금메달을 땄지만 지금은 고교 특활부 학생도 구사한다. 숙련성 한계에서 혁신이 만들어진다. 디지털 혁신을 외치기에 앞서 우리 회사의 숙련성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Photo Image

강태덕 박사 streetsmartkang@gmail.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