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게임 개발자들이여,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기지를 발휘하라

Photo Image
배현직 넷텐션 대표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던 1995년에는 프로그램 개발 환경이 현재와 비교해 매우 불편했다. MS-DOS 운용체계(OS)에서 어셈블리어와 C언어를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다. 어셈블리어는 프로그램 개발 효율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언어다. 원시 형태였고, 게임 개발 진입장벽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낮은 컴퓨터 하드웨어(HW) 사양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게임을 개발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와 윈도 OS와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됐다. 컴퓨터 HW 성능도 발전했다. 비주얼 스튜디오나 델파이, 자바 등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와 프로그램 개발 환경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개발 효율성은 크게 향상됐다. 일부에서는 “이러다가 프로그래머가 모두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예상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프로그래머는 더 많이 필요해졌다. 소프트웨어(SW) 개발이 쉬워지고 사용할 사람이 증가하자 많은 기업이 양질의 SW를 공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개발 기간도 길어졌다.

게임 SW를 개발하려면 게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정보나 월드 지형 정보 등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편집 SW도 있어야 한다. MS-DOS 시절에는 편집 SW 개발이 매우 어려웠지만 윈도와 각종 프로그램 개발 도구가 등장하면서 훨씬 쉬워졌다.

다양한 도구를 포함시키고 화려한 그래픽 연출이나 실물 형태의 시뮬레이션, 네트워킹, 서버 처리 등을 해 주는 게임 엔진과 게임 미들웨어 SW가 등장하면서 게임 개발은 나날이 쉬워졌다. 하지만 편리하고 좋은 환경에도 게임 개발에 들어가는 인력수와 기간은 오히려 증가했다.

2019년 현재 게임 엔진 기술은 다소 정체되고 있다.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나 게임 개발 관련 매거진에서는 새로운 게임 프로그래밍 기술이 과거보다 적게 등장한다. 게임 마케팅이나 매출 극대화를 위한 통계분석 기술에 집중하는 추세다.

게임 회사도 이제는 Direct3D나 OpenGL, 소켓 프로그래밍 같은 기반 기술을 다룰 사람보다 유니티·언리얼엔진·프라우드넷·웹프레임워크 같은 게임 엔진을 다루면서 게임 콘텐츠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만 찾고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뭔가 정체된 분위기다.

다행히 여러 돌파구가 있다. 첫 번째로 수직 통합이 있다. 스페이스엑스는 우주항공을 위해 기반 기술부터 상위 기술까지 모두 자체 제작하는 수직 통합을 통해 종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비행을 성공시켰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과 '검은사막 모바일'을 자체 개발한 게임 엔진으로 개발했다.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에서 보여 줄 수 없는 게임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최적화를 이뤄 냈다.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 같은 외산 게임 엔진 기술력에 의존하지 않고 게임 회사가 독자 기술력을 발휘했다. 치열한 게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의도 있다.

두 번째로 기존 개발 환경과 게임 엔진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 있다. 상용 게임 엔진을 사용해 콘텐츠 프로그래밍에만 집중한다면 인건비를 종전 대비 4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건비를 4분의 1로 줄이지 말고 콘텐츠 프로그래밍에 나머지 4분의 3이 더 투여된다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게임 콘텐츠는 종전 대비 4배가 풍성해질 것이다.

이제 나올 게임은 다 나왔고 게임 엔진은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고 머뭇거리지 말자. 발전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발전해야 할 계층(layer)이 달라졌을 뿐이다. 훌륭한 게임 엔진과 개발 환경이라는 거인의 어깨가 있다. 이제 게임 개발자는 그 어깨 위에서 새로운 기지와 노력을 들이붓고, 과거에는 보지 못한 독창성 풍부한 게임을 소개해 주길 기대해 본다.

배현직 넷텐션 대표 hyunjik.bae@nettention.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