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63>피라미드 밑바닥(BOP)에서 찾는 혁신

“나는 이 책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합니다. 40억명의 빈곤층을 사회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건에 굴하지 않고, 가치에 좀 더 민감한 소비자로 인식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이들은 번영의 원동력이자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경영 구루 가운데 한 사람인 프라할라드 교수가 쓴 저서의 서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기업 성장에는 새 시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개 생산 공장이거나 저가 제품을 소진할 이윤이 박한 시장 정도로 생각한다. 샴푸를 저렴한 일회용 낱개 포장으로 만들어서 판 프록터앤드갬블(P&G) 정도만 해도 이 시장을 훌륭히 포용했다고 말한다.

과연 이곳에 기회란 이것뿐일까. 혹시 이곳이 숨은 혁신의 원천인 것은 아닐까. 2000년 초 르노가 만든 자동차는 동유럽 쇼룸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었다. 세련되고 신뢰할 수 있되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기로 한다. 가격을 낮추자니 플랫폼부터 바꿔야 했다. 부품도 줄이고, 조립은 루마니아에서 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6500달러짜리 로간은 동유럽 시장을 석권한다. 2년 후 르노는 안전과 디자인을 손봐 서유럽 시장에 내놓는다. 2013년에 이 9400달러짜리 고급형 로간은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만은 최고급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생산했다. 업마켓에서 하만은 최고 기업이었다. 그러나 2007년에 최고경영자(CEO)가 된 디네시 팔리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언제까지 이 독점이 안전할 리는 없다. 지금은 저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언젠가 도전해 올 것은 자명했다. 업마켓을 사수해야겠지만 저가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자칫 품질이 떨어지면 브랜드는 되돌릴 수 없다. 최신 기술을 적용하기에는 저가 시장 가격대가 너무 낮았다. 고민 끝에 팔리왈 CEO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적응'이란 의미를 담아 '사라스(Saras)'라는 이름을 붙인다. 로엔드에서 판매할 수 있을 단순 저렴한 새로운 아키텍처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사라스 프로젝트는 결국 그 이름처럼 최고 성능을 4분의 1 비용으로 구현했다.

Photo Image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저가형 자동차 모델을 타깃으로 했지만 토요타 같은 고급 차종에서 요구되는 성능도 더 저렴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사라스 프로젝트는 시작 18개월 만인 2011년 봄까지 30억달러의 신규 사업을 만들어 낸다. 2007년 전체 매출액에 맞먹는 규모였고,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주가는 4배나 치솟는다.

저소득층을 고객으로 삼는다면 기존 기술로는 어렵다. 90% 성능을 10%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르노와 하만 모두 이런 제약이 혁신을 일으켰다. 또 혁신 기술을 선진국 시장으로 되먹여 가져왔다.

2006년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고 의역돼 출간된 프라할라드 교수의 저서 원제목은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이다. 직역하면 '피라미드 밑바닥의 노다지'다. 그는 이 시장을 새로운 부의 원천이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 피라미드 밑바닥에 숨겨진 행운(fortune)이다. 르노와 하만이 찾아낸 '피라미드 바닥에서 찾는 혁신'은 진정 행운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라미드의 어느 곳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이기 때문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