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전체 효율 좌우하는 PCS 해외 대기업 저가 입찰 잇달아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해외 업체의 '저가 공습'이 강화됐다. 해외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저가 입찰로 시장 잠식에 들어갔다. 연간 4조원대에 이르는 국내 ESS 시장에 중소기업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산 제품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외산 제품 확산으로 전체 ESS 시장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입찰이 진행되고 있는 해남 솔라시도 태양광 프로젝트에 설치되는 ESS에 미국 G사의 전력변환장치(PCS)가 채택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는 98메가와트(MW) 규모의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소 사업으로, PCS 발주 규모만 8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G사를 비롯해 중국 S사, 미국 P사 등 해외 대형 PCS 업체가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국내 ESS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향후 진행되는 대규모 ESS 프로젝트에도 외산 PCS 채택 공산이 커지고 있다.
EPC(설계·조달·시공)사가 외산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PCS 가격은 MW당 평균 9000만원 정도인데 해외 업체는 10~20% 저렴한 가격을 책정,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PCS는 ESS 구성 요소 가운데 시스템 전체 효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부품이다. 업계에서는 외산 채택으로 인한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의 경쟁력 약화와 함께 ESS 운용 효율 저하에 따른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최근 국내 EPC 업체가 자사가 설치한 전국 ESS 운전 실적을 바탕으로 시스템 효율을 자체 분석한 결과 PCS 성능에 따라 ESS 시스템 충·방전 효율 차이가 최대 92.7%에서 최저 90.2%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외산 PCS는 국내 최고 효율 제품과 비교해 1.5~2.0%까지 효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효율이 좋다는 의미는 그만큼 ESS 사업자에게 많은 수익을 되돌려 준다는 의미다. 효율이 0.1% 차이가 나면 연간 운용수익(2MW급 기준)은 약 600만원 차가 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효율이 2% 차가 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1억2000만원 수익 차가 발생하고, ESS 평균 수명 주기인 15년 동안에는 20억원 이상 손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ESS 설치 용량이 커질수록 이 차이도 수백억원 수준으로 커진다.
한 국내 PCS 업체 관계자는 “효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열로 빠져 나가는 손실이 많다는 의미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자금 수백억원이 오히려 열로 허공에 뿌려지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발주처가 '무조건 싸게'만 외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국내에 들어서는 대규모 태양광·풍력발전 단지가 해외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것에 문제를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 진출하는 PCS 업체 대부분이 해외 대기업이기 때문에 시장 선점을 위해 초반에 공격적인 가격 정책이 가능하다”면서 “그 대신 일부 부품이 고장 나면 시스템 비용의 80%에 이르는 수리비를 받는 이른바 '애프터마켓' 전략으로 수익을 보전하는 곳도 있어 초반 가격 경쟁력이 있지만 유지보수 비용과 효율에 따른 운용 수익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고효율의 국산 제품 채택을 유도할 만한 방법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상태다. EPC사가 발전사에 보증하는 최저 효율은 평균 89%로, 실제 운용 효율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ESS 시스템 고효율 인증 제도도 충·방전 효율 90% 이상이면 모두 받을 수 있어 기술력을 가리기에는 변별력이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인증 기준을 높이면 기술력을 갖춘 국산 업체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