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개방해 건전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는 연이은 실적 악화로 신제품을 개발할 인력을 영입할 여력마저 부족한 회사가 다수다. 정부에서 영세 업체들이 신제품과 설계 자산을 개발하고, 덩치를 키워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정부와 기업이 '쌍끌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시스템반도체 상장사의 고용 증가율은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해 매출 기준 10대 시스템반도체 기업의 직원 수는 모두 2105명이다. 2017년(2079명) 인원 수보다 겨우 1.25% 늘어났다.
2016년에 전년보다 6.4% 늘어난 1942명, 2017년에는 7.05%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물론 고용이 크게 늘어난 기업도 있다. LG그룹 계열 실리콘웍스는 855명에서 884명으로 30명 가까이 인력을 늘렸고, 텔레칩스, 제주반도체 등도 10명 이상씩 직원 수를 늘렸지만, 이는 최상위 업체에 국한된다.
시스템 반도체 업체 고용난은 업황 악화, 좁은 인력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상위 10개 회사 가운데 아나패스, 알파홀딩스, 티엘아이, 동운아나텍, 픽셀플러스 등 5개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의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은 중국 시스템반도체 회사들이 거세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탓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상장사는 인력이 나가더라도 버틸만한 체력이 되는 수준”이라면서 “규모가 훨씬 작은 중소업체는 인력이 나가면 급하게 땜질하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이 국내 시장까지 들어와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을 사가면서, 기술 유출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정부에서 시스템 반도체 기술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함께 '쌍끌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개방이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에게 연구개발 자금과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므로, 정부 차원에서 영세 회사들이 스스로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자양분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결국 설계자산(IP)을 개발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기업인데, 이들이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분야 칩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많은 연구 과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과 학계를 연계한 과제를 마련하면 인력도 자연스럽게 육성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이 대기업의 인재들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을 키우면 반도체 생태계에도 인력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