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명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5%가 넘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이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는 39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젊은이들 얘기다.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한다는 안을 두고도 설왕설래한다. 정부 지원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 등급도 필요하겠지만 장애 상황에 따른 개인서비스가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맞춤형 장애 분석과 극복을 위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역할이 제기됐다.
장애는 단순히 걸림돌이다. 신체의 불편함과 정신 질환 정도가 심해서 생활에 걸림돌이 되면 장애인이라 부를 뿐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예비 장애인이다. 장애 극복은 장애인만의 문제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중도 장애인이 90%를 넘고, 나이가 신체와 정신의 연령 장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 벗고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을 둔 개인 맞춤형 장애 지원 서비스'를 추진하고, 기업과 사회가 맞장구치는 선순환 흐름이 필요하다.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기술 가운데에서도 약물치료를 보완·대체하는 소프트웨어(SW) 중심 디지털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다. 신경정신 질환자 수 포화, 조현병 환자의 일탈, 부대 관심사병 증가, 노인의 폭력성 치매, 청소년의 극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 등 심리 치료가 필요한 모든 부분에 사물인터넷(IoT) 기반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미국에서 매년 연 30.7% 이상 성장하고 있다.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를 받은 마약중독치료용 SW 리셋(reSET),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용 게임 아킬리(Akilli)가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열었다. 여기에 보험 인정으로 4800만명 환자를 확보한 당뇨치료제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눔(Noom)과 가상현실(VR) 게임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제 등이 가세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5G+를 주장하는 우리나라도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고 적용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
디지털치료제로 장애를 극복하려면 원격의료,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규제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 수십년 전에 제정된 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일 논쟁을 계속하는 사이 다른 나라는 저만치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민감도와 피해 예상 규모에 근거해 데이터 활용 정도를 정하고, 비식별화 과정 등을 통해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시장을 만들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 간 장벽도 4차 산업혁명의 걸림돌이다. 국가 이익보다는 부처 이익을 앞세우는 부처 이기주의와 문제 발생을 원천 차단하려는 복지부동의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지정한다고 하지만 아직 효과를 본 적이 없다. 부처 간 협력을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고 과학기술과 산업을 총괄하는 부총리제도를 부활시키는 대통령의 의지가 필요하다.
장애 극복을 위한 서비스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예비 장애인 의식이 팽배하면 장애 산업은 점차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지원 사업으로 시장을 형성하는 것은 복지와 경제를 살리는 일거양득을 노리는 지혜다. 장애인을 우선한다는 선한 국가 이미지까지 제고할 수 있으니 '일거 3득'이다. 4차 산업혁명이 장애인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면 기술의 승리다. 그리고 기술이 무엇을 하는지는 인간의 결정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