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인가?]<5> 게임이 찾아준 진로 탐색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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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적성과 희망을 고려한 진로 탐색은 청소년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명문 대학진학이 목표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규격 외 진로 탐색은 배제당하기 일쑤다. 공부에 흥미와 적성이 없는 학생은 진로 탐색 기회를 뺏긴 채 별종 취급을 받는다.

신산업이자 기성세대 이해도가 부족한 e스포츠는 특히 더 그랬다. 게임은 적성과 직업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학생을 망치는 천덕꾸러기로 오해받았다. 하지만 게임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입시켜 적성과 진로를 개발할 수 있게 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진로 탐색 도구로서 더할 나위 없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아현산업정보학교 e스포츠과에는 인문계를 뛰쳐나온 학생 30명이 전문 게임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프로게이머 외에도 게임해설자, 게임기획자, 1인 미디어, 콘텐츠 기획 등 게임과 e스포츠 관련 신생 직업 진로를 모색한다.

게임 이해도가 높은 지도교사와 전문코치가 함께한다. 게임 운영, 전략을 실습한다. 프로팀 에이전시, 프로선수 특강을 통해 업계 이해도를 높인다. 매년 SKT1을 비롯해 OPGG, 샌드박스게이밍 등에 입단하는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올해 30명을 뽑는데 87명이 지원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히 좋아서, 공부하기 싫어서 선택하는 도피처가 아니다. 미래를 향한 목표이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내가 선택한 길'이다. 게임과 교육을 미래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 매 순간 매진하고 있다.

실제로 만난 학생들 눈은 목표 없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눈이 아니었다. 총기가 가득했다. e스포츠과에 있는 한 시간 동안 그 흔한 욕설 한 마디조차 들리지 않았다.

e스포츠과를 지도하는 김형석 교사는 “게임을 잘하도록 이끌고 게임을 하면서 자제력을 포함한 생활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며 “게임을 매개로 학생과 대화가 가능해져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행동과 생각 폭을 넓혀준다”고 말했다.

기성세대 눈으로 볼 때는 탈선 직전인, 게임을 더 좋아하던 학생들이다. 학교도 잘 안 가고 가도 수업시간에 잠만 자던 골칫거리였다. 게임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을 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게임을 정식으로 교육받으며 존재를 인정받자 아이들은 변했다. 미래를 향한 확고한 의지가 생겼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6시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업을 소화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남아 복기하고 연구한다.

김서진 e스포츠과 학생은 “내가 선택한 일인지라 인생 자체가 재미있고 활력이 생겼다”며 “재능을 개발·계발하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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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도 변했다. 자녀 진로에 관심을 갖고 적극 질문하는 학부모가 늘었다. 김 교사는 “국영수 시간에 자기만 하던 아이가 의욕이 생기자 부모가 가장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홍승혁 학생 어머니는 아들 활동을 적극 응원한다. 자녀가 선택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응원이다. 홍 군은 “심하게 반대하던 아버지는 최근 대회결과를 물어보기도 한다”며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e스포츠과에서 학생들은 게임 외에도 다른 교과목도 배우고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따른 게임콘텐츠 기획, 프로그래밍을 위한 C언어, 영상편집, 포토샵 등 그래픽 도구 사용능력을 갖춘다. 향후 e스포츠 산업, 시장에서 종사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 능력을 습득하고 있다.

바늘 귀 보다 좁은 프로게이머 데뷔가 좌절됐을 때 적성에 맞는 인접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홍 군은 “게임 관련 수업을 받으면서 프로게이머 혹은 e스포츠 해설자로서 진로가 확고해졌다”며 “만약 이루지 못하더라도 향후 BJ, 스트리머 같은 1인 미디어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있어 e스포츠 산업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군 역시 “프로게이머가 목표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지하게 진로를 확인하고 생각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 군은 최근 배운 포토샵에 흥미를 느껴 디자인 공모전에 참가하는 등 진로 탐색에 열중이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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