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잊혀진 요금인가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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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기자

1988년 우리나라에 휴대폰이 개통된 이후 5세대(5G)까지 이동통신은 30년 동안 진화를 거듭했다. 이와 더불어 이통 규제도 변화됐다.

전기통신사업법은 1984년 공중전기통신사업법으로 제정된 이후 54번 개정됐다. 지난해 기간통신사 진입 규제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법률 개정은 역대 가장 큰 변화로 꼽을 만하다.

전기통신사업법에는 30년 동안 한 번도 변화하지 않은 조항이 있다. 1991년 도입된 통신요금 인가제다. 요금인가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신규 요금 상품을 출시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용약관 심의자문위원회를 거쳐 장관 인가를 받도록 한 규정이다.

요금인가제는 1991년 이동통신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며 '안전핀' 역할을 했다. 본래 취지는 경쟁이다. 통신 시장 초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요금 인상 또는 '약탈적 요금인하'를 차단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5G 시대 요금인가제는 경쟁을 저해하는 족쇄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 간 경쟁력이 대등해졌다.

5G 요금제 출시 경쟁에서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났다. KT는 5G 요금제를 출시하며 월 8만원 이상 요금제에 데이터 완전무제한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공개했다. SK텔레콤은 곧바로 요금제를 변경, 경쟁하기 어려웠다.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가능한 프로모션 수정이라는 고육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계가 분명했다.

통신 속도는 5G급으로 증대됐지만 규제는 2G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도 요금인가제를 부작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옛 미래창조과학부는 2015년 19대 국회에서 요금인가제 폐지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20대 국회에서도 정부 입법으로 관련 법률(안)을 다시 제출하며 정책 기조를 이어 갔다.

그러나 요금인가제 폐지에 대한 정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다. 과기정통부가 국회에 여러 차례 요청한 중점 처리 필요 법안에 보편요금제는 포함됐지만 요금인가제 폐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요금인가제 폐지를 국회에 발의하고 원론적인 입장을 표했다고 끝낼 게 아니다. 요금인가제 폐지 이후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하고 폐지 이후 통신 규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약탈적 요금제 또는 과도한 요금 인상이 우려된다면 사후 규제로 보완할 수 있다. 2002년 프랑스 규제 당국은 초고속 인터넷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워너두가 경쟁사에 타격을 주기 위해 원가 이하로 요금제를 판매한 사실을 적발, 원상 복구를 명령하고 징계했다. 이 같은 사례를 연구해서 보완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찾아보기 어렵다.

5G가 진화하고 혁신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요금 규제 논쟁을 되풀이할 수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무관하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요금인가제를 유지하는 상황을 지속하는 상황은 정부 스스로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

과기정통부가 5G 스마트폰 상용화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새기고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한다. 5G 특징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어떤 혁신 서비스가 등장할지 예상하기 어렵고 요금 구성도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끝까지 사전 규제로 통신비를 관리할 것인지 경쟁 활성화를 통해 자발적인 통신비 인하를 유도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했으면 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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