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펀치]<104>규제 샌드박스에 거는 기대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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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제출 서류를 최소화했습니다.” 규제 개혁의 보폭을 넓히려는 부서의 시도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누군가 지적한다. “신고 자체를 없애면 어떨까요?” 본교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 졸업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도, 국세청에서 납세증명서를 떼어 오라는 보건복지부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모임에서 '규제 철폐'는 단골 메뉴다. 벤처기업, 대기업, 교육계, 의료계, 문화계를 막론하고 규제라는 장애물 때문에 사업하기가 어렵고 미래가 암울하다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철폐를 선언하지만 규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제거된 개수만을 강조하는 실적 중심 정책 때문에 규제 쳇바퀴는 변함없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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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과거의 틀에 안주하려는 나태함과 새로움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면피 근성이 첫째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몰고 올 변화를 거부하는 거대한 몸짓이다. 미국은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디지털치료제 시장 활성화를 위해 9개 대표 기업을 내세워 사전인증제를 시행했다. 기존의 틀을 고집하면 어림없는 일이다.

행정과 관리의 편의주의가 또 다른 이유다.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피하고 단순화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산업을 위축시키고, 국민에게 자신의 업무를 전가한다. 부처 협조가 있으면 사업자등록증 제출은 사업자등록번호 표기로 가능하다. 하물며 “여러 부처가 관여되면 절대로 성사되지 않는다”는 투덜거림이 설득력을 발휘한다.

규제가 계속되면 신규 산업 창출, 자유로운 시장 활동, 교육 환경 자율성 등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 불편을 초래한다. 지나친 개인정보보호법, 원격 의료를 불허하는 의료법, 드론 육성을 저해하는 항공법, 핀테크를 저지하는 금융법, 자율자동차의 족쇄인 자동차안전기준과 도로교통법 등 산재한 법들이 과감하게 정리돼야 한다. 어차피 갈 길을 막은 규제를 피해 가기 위해 부정과 편법이 양산되고 불신과 억압이 만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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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함께 민간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규제 개혁 불쏘시개는 소비자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무규제로 생기는 부작용을 수용하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없으면 개혁은 요원하다. 틈만 나면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정부 감사도 검토 대상이다. 자율질서 유지로 규제의 비효용성과 대체성의 근거를 증명할 필요도 있다.

올해부터 신기술이 발목 잡히지 않도록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됐고, 제도 시행 이후 홈페이지 접속이 20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지난주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는 '이동형 가상현실(VR) 체험서비스 트럭' '모바일 기반 폐차 견적 비교 서비스' '스마트 전기자동차 충전콘센트' '개인인명구조용 해상조난 신호기' 등에 실증특례·임시허가를 부여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 지옥의 탈출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규제 샌드박스가 안고 있는 숙제는 연속성을 띤다. 자유롭게 사업을 시작한 기업이 다시 틀에 갇힌다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은 자명하다. 규제 샌드박스가 완전히 자유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안정 기조 위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국가 기반을 만드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규제 철폐는 국민의 행복과 미래 발전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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