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스마트진료'로 간판 바꾼 원격진료, 사회 갈등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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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논쟁을 거듭하던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스마트 진료'로 간판을 바꿔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산업계-시민단체 모두 각각 실효성, 안전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매 정권마다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던 '원격진료' 논쟁이 재점화된다. 국민 건강권 보장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 사이에서 해결책 마련이 절실하다.

◇'의사-환자' 원격진료 첫 발

보건복지부는 최근 2019년도 업무보고를 하면서 의료 사각지대를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스마트 진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 진료 핵심은 의사-의료인,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이다. 우선 현행 법 내에서 도서·벽지, 응급, 분만취약지, 고위험산모 등을 대상으로 의사-의료인 간 원격 협진을 강화한다. 현재 홍성군에서 시범적으로 진행되는 의사(공중보건의)-방문 간호사 스마트 협진 모델을 최대 40여개까지 늘리는 게 핵심이다.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지속해 온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복지부는 의료법을 개정해 도서〃벽지,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해 의사-환자 간 스마트진료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갈등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제한적이나마 첫 발을 디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은 불문율에 가까웠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심화하는 동시에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는 것은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실제 2006년 이후 매년 복지부 업무계획에 '원격진료'는 단골 이슈였지만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실패했다. 복지부는 2013년 10월 의료기관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를 추진했다. 원격진료가 가능한 환자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거주자 등으로 제한했다.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은 동네 의원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국회 상정조차 못하고 표류했다.

원점에서 맴돌던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한다는 것은 전향적이다. 도서·벽지, 군부대, 선박 등 의료 접근성이 제한적인 영역에서 원격진료 허용은 국민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박동균 가천대 길병원 전산정보 실장은 “(원격진료 관한) 전면적인 혁신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논쟁이 됐던 이슈를 제한적이지만 시작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국민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상황이라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첫 발을 뗐지만 산업계·시민단체 갈등 재점화

큰 틀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의미가 크지만,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증폭한다는 점에서 논란 여지는 있다. 산업계는 '실효성'면에서, 의료·시민단체는 안전성과 생존권 측면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

우선 산업계는 글로벌 패러다임인 디지털 헬스케어, 맞춤형 건강관리 환경에 이번 정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도 점진적 확대가 전제되지 않은 정부 정책에 실망감을 표출한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한정한다고 밝혔다.

오상윤 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소외계층에 한정한다”면서 “전면적인 원격진료 허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실질적으로 산업계는 제한적 원격진료 허용은 국민건강,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원격진료는 의료 서비스 소외계층에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 외에도 국가 과제인 만성질환, 고령화 문제를 해소하는 도구로 주목 받는다. 당뇨, 고혈압, 비만 등 만성질환을 체계적이고 면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ICT 기술을 활용한 생활 밀접형 대응이 중요하다. 환자 대부분이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의료기관 내 관리가 아닌 원격진료로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데도 원격진료는 효과적이다. 동네의원으로 대표되는 1차 의료기관이 원격 솔루션을 활용해 맞춤형으로 환자를 관리할 경우 환자는 굳이 대형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에서 원격진료 솔루션과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산업 육성 기반이 마련된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의료 소외계층에 원격의료를 한정하는 것은 산업계나 국민, 수익성에 어려움을 겪는 1차 의료기관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서는 특정 계층에 제한하는 원격진료를 넘어 점진적으로 확산하는 중장기 플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입장과 달리 의료·시민단체도 반발한다. 제한적이지만 사실상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병원의사협회는 “세계에서 가장 의료 접근성이 좋은 우리나라에서 원격진료를 추진한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라면서 “정부가 원격진료를 강행하는 이유는 대면진료보다는 낮은 원격진료 수가 책정으로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대면진료가 원칙인 의료 서비스가 원격진료로 전환될 경우 환자 안전에 심각한 우려도 제기한다. 진료는 환자와 상담에 기반한 문진이 출발점이며,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의료 상담이 이뤄져야 하지만 원격진료는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원격진료, 산업육성·저수가 체계 해소하는 도구로 봐야

'스마트 진료'로 간판을 바꿔 단 원격진료로 사회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단순히 찬반 논란을 떠나 현 정부 정책을 해묵은 의료계 문제를 해소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CT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의료 서비스 선택권, 국가 신성장 동력 확보에 큰 영향을 준다. 원격진료는 의료 서비스의 특정 방식이 아닌 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조사업체 스태디스티카에 따르면 세계 원격진료 사용자는 2013년 35만명에서 2018년 700만명으로, 20배나 성장했다. 세계 원격의료 시장 역시 2015년 181억달러(약 20조5923억원)에서 2021년 412억달러(약 46조8732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원천 차단되면서 산업육성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매 정권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으로 제시했지만, 원격진료가 금지된 상황에서 성장 모멘텀은 전무하다.

아산재단에 따르면 100대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국내시장에 진출할 경우 75개 기업이 비즈니스를 전혀 못한다. 이유 중 절반(44%) 가까이가 '원격의료 규제' 때문이다. 세계가 발 빠르게 대응하는 원격의료에 우리나라만 갈라파고스가 되는 현실이다.

산업 효과를 넘어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같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고, 저수가 의료기관 수익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원격진료에 대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

실제 동네의원과 같은 1차 의료기관은 저수가와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으로 사실상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서 의료기관 수익성은 타격을 받는다.

점진적으로 원격진료를 허용할 경우 '의료자원 배분의 효율화'를 구현 할 수 있다. 1차 의료기관을 원격진료 거점으로 활용하고, 여기에 따른 수가 보전을 명확히 할 경우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이 가능하다.

한 1차 의료기관 원장은 “현재 1, 2차 의료기관의 가장 큰 고민은 정부의 저수가 체계에서 어떻게 생존권을 보장받을지다”라면서 “정부가 처방을 포함한 원격진료 수가를 보장할 경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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