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비트코인 폭락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 근간 기술인 블록체인은 안정적 성장세를 나타냈다.
세계 벤처 투자 자금이 기술력을 갖춘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 중국으로 대표되는 국가들도 블록체인 육성 경쟁에 뛰어들어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암호화폐 투자 열풍 결실이 올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구상 수준에 머물러 있던 블록체인 기술이 본격 상용화 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보험을 비롯한 금융, 게임, 유통 분야에서 대규모 블록체인 기술 도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금융·보험, 블록체인으로 '탈중앙화, 탈중개화'
미국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12억달러였던 블록체인 산업 규모는 2023년 233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 기간 예상되는 연평균 성장률은 80%다.
블록체인 산업의 이 같은 안정적 성장은 금융, 유통, 제조업 등 전통 산업군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술 상용화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 이 중에서도 금융업은 블록체인 활용 잠재력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특히 은행 간 송금은 기존 중앙화 시스템 구조의 비효율성 문제가 심각했던 만큼 기술 도입 속도가 두드러진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8BTC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자금 지급 청산 관련 매출 중 국가 간 송금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한다. 국제 송금의 건당 평균 수수료율은 7.68%에 달한다. 반면에 블록체인의 가장 기초 모델인 비트코인만 도입해도 거래 시간을 약 30분으로 줄일 수 있다. 기존 은행 간 송금 업무가 평균 3일 정도가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결과다.
동시에 기존 금융기관들의 이익관계를 감안할 때 선진국보다 개도국 내 블록체인 송금 시스템 수용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체인디디는 “과거 일부 개도국이 신용카드 시대를 넘어 모바일 결제 시대로 바로 진입한 것처럼 개도국 주도의 블록체인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 수 있다”며 “일부 개도국은 금융 발전 수준이 낮지만 스마트폰, 모바일 인터넷 보급이 잘 돼 있다. 개도국들은 방대한 수요와 양호한 인프라 시스템을 바탕으로 향후 1, 2년 내 금융 분야 블록체인 도입에 본격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개도국 금융 블록체인 성공 사례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2013년 탄생한 아프리카 금융 스타트업 비트페사가 대표 사례다. 비트페사는 케냐, 나이지리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 지역 내 암호화폐 기반 기업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며 단기간 내 월평균 거래액 1000만달러(약 113억원) 규모 회사로 성장했다.
보험 업계의 블록체인 도입도 가속화하고 있다. 보험은 은행간 송금과 비교해 소비자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서비스인 만큼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항공 지연 보험 상품 관리에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하면 비행기 연착 시 보험금 계산과 지급이 스마트 컨트렉트를 통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항공편 시간 오차 등 데이터는 블록체인 상에 투명하고 영구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 네트워크 상에서 정해진 약속대로 시스템이 자동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보험사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이용자는 신뢰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 글로벌 블록체인 리서치 업체 ICO레이팅스는 “블록체인 도입을 통해 기존 보험업에 '탈중앙화, 탈중개화'를 실현할 수 있다”며 “2019년 보험업계 블록체인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게임, 블록체인 선택적 활용…업계 전환점
국내 블록체인 투자 업계 맞형인 해시드는 20일 저녁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앱) 액셀러레이팅 프로젝트 '해시드랩스' 출범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주로 블록체인 인프라 서비스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실제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응용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발굴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시드가 올해 첫 번째 투자 타깃으로 꼽은 것이 바로 '게임'이다. 김균태 해시드랩스 총괄은 이날 “블록체인 게임 서비스 시장은 과거 모바일 앱스토어 생태계의 성장과 비교했을 때 더욱 가파른 성장 곡선을 보인다”며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경험이 많고 실력 있는 팀이 속속 블록체인 기반 게임 개발에 뛰어들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는 대중이 불편함 없이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 산업의 블록체인 도입은 참신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한계에 부딪히며 최근 들어 열기가 한 풀 꺾인 모양새다. 실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게임 대부분이 베팅 등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있고, 그나마 출시된 게임도 일시적으로 반짝하는데 그쳤다.
실제 3대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꼽히는 이더리움, EOS, 트론에 등록된 게임 서비스 70% 이상이 단순 베팅형 게임으로 추산된다. 반면에 올해에는 기존 블록체인 상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 대신, 전통 온라인 게임에 부분적인 기술 보완 수단으로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는 “그동안 블록체인 기반 게임은 실질적 수요 시장 부재, 단순 기술적 테마 혹은 이슈를 통한 인기몰이 등이 주요 한계점으로 지적됐다”며 “앞으로는 기존 전통 게임 수요를 그대로 끌고 가되 블록체인 기술을 게임 결제 지원 혹은 시스템 운영, 기타 신기술과 접목 등에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
배틀로얄 게임 포트나이트의 개발사인 에픽게임즈가 프라이버시 코인으로 유명한 모네로를 굿즈 구입 결제에 부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게임시장 강자인 텐센트가 증강현실 기술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블록체인 게임 개발 업체 티게임즈는 “향후 게임업체들이 아이템 거래, 아이템 인증, 플레이어 신원 인증 등에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내다봤다.
◇유통, 중국 첫 블록체인 정부 허가 업체 탄생
22일 다수의 중국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첫 번째 블록체인 기업이 탄생했다. 산둥성 기반의 쯔량렌이라는 기업으로 20일(현지시간) 중국 인터넷규제를 담당하는 사이버관리국(CAC)의 '블록체인 정보 서비스 관리규정'을 처음으로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이 기업은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합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해당 업체 주력 사업은 유통이다. 제품 생산의 유통 과정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개발, 파트너사들에 식품 추적, 물류 관리 등 솔루션을 제공한다. 중국 가전업체 미디아와 맥주회사 칭다오 등이 쯔량렌의 대표적인 파트너사다. 실제로 유통 분야에서 블록체인은 유통 과정 관리 및 추적의 대안으로 손꼽힌다. 동시에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도 각광받는다.
특히 명품 시장 잠재력이 눈에 띈다. 명품 구매 방식이 신흥국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발생한 짝퉁 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블록체인의 위·변조가 불가능한 특성을 활용해 브랜드 제품의 진위 여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명품 유통 전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 도난당한 명품이 다시 판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샤넬이 한정판 가방 1000개를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가방마다 고유 QR코드를 탑재하고 동시에 이에 대응하는 블록체인 기반 ERC721 토큰 1000개를 발행하면 이더리움 지갑의 QR코드 스캔 기능을 통해 원산지, 통관 정보를 비롯해 모조품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체인디디는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처리 작업은 명품 제조 업체조차도 조작할 수 없는 만큼 투명성이나 신뢰성이 높다”며 “명품 업체는 블록체인 기술 활용만으로도 자사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제 상업 회의소에 따르면 전 세계 위조품 연간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한다.
아울러 블록체인의 안전성과 투명성은 식품 유통 산업 수요와 맞아 떨어진다. 세계 최대 유통 업체 월마트는 2016년부터 IBM과 협력해 식품 공급망에 블록체인을 활용, 블록체인 기반 채소 공급업체 식품 추적 시스템 도입에 나서고 있다. 세계 33개국 1만2000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까르푸 역시 2022년까지 블록체인 기반 식품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코인니스 business@coinn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