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 국내 이통 3사는 일제히 5G 주파수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5G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LTE(4G)도 사용에 큰 불편이 없는데, 벌써 5G라니 일반 사용자 입장에선 막연히 속도가 더 빨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뭐가 좋아진 건지 잘 와 닿지 않는다. 이통사도 마찬가지다. LTE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건 없다. 그나마 주력 서비스로 언급되는 게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다. 한 때 VR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여러 기술 문제로 한풀 꺾인 듯하다. 하지만 5G와 함께 VR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우 넥스트데일리 기자 tk@nextdaily.co.kr
■ 19세기 등장한 가상현실
VR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19세기이며, 관련 기술은 1968년 미국 유타대 이반 서덜랜드가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즉 하루아침에 나온 기술이 아닌 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처럼 VR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건 2012년 팔머 럭키가 VR 업체 오큘러스를 창업하면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테마파크나 오락실뿐만 아니라 전용 VR방까지 생겨나고 있으며, 전면부에 스마트폰을 장착하는 VR 헤드셋이나 PC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가정용 VR 헤드셋 등 다양한 관련 제품도 판매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상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VR를 처음 접한 건 2014년 IFA에서다. 당시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폰을 장착해 VR를 즐길 수 있는 기어 VR를 처음 내놓았다. 물론 현장에서 기어 VR를 체험해 보고 실망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 VR는 많은 발전이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 몰입도 떨어트리는 해상도
VR 디바이스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해상도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PPI(Pixel Per Inch)를 높인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장착이 보편화된 상태다. 픽셀 밀도가 높아 과거 모니터처럼 눈으로 픽셀을 보기 어렵다. 그만큼 깨끗한 화면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VR는 여전히 해상도가 낮다.
플레이스테이션 VR 한쪽 해상도는 960×1080이고, 오큘러스리프트도 1080×1200 화소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기어VR 또한 1280×1280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문제는 디스플레이와 눈과의 거리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
아마 VR 기기를 착용해 본 경험자라면, 도드라져 보이는 픽셀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디스플레이 위치가 눈 바로 앞인데, 해상도는 너무 낮다 보니 픽셀 하나하나가 선명히 보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몰입감은 떨어진다. 특히 VR 기기를 착용하면 멀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낮은 해상도는 이를 유발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다행인 건 4K나 8K를 지원하는 VR 기기가 하나둘씩 개발되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 맞는 콘텐츠는
VR 기기가 준비되고 있는 상황에 발맞춰 콘텐츠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4K나 8K를 품은 콘텐츠는 일반 개인이 다루기에 쉽지 않다. 먼저 콘텐츠 용량이 엄청나게 커진다. 4K 영상은 길이가 10분만 되어도 몇 기가바이트(GB)는 우습게 나온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저장해서 이용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영상을 좌우 두 개 디스플레이가 재생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파워도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스트리밍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현재 LTE 속도에서 4K나 8K 영상 스트리밍은 쉽지 않다. PC에 유선으로 연결한 VR 헤드셋이 그나마 고해상 콘텐츠를 소화하기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유선 방식 VR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현실에서 케이블로 어딘가 묶여 있다면 불편하다. 당연히 머리에 쓰는 VR 헤드셋이 유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 5G와 VR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
5G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이 그것이다. LTE는 기존 3G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5G는 단순히 속도만 더 빨라진 것이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4G보다 속도는 더 빨라졌다. 최대 다운로드 속도가 무려 20Gbps나 된다. 15GB나 되는 4K 영화를 6초 안에 내려 받을 수 있는 속도다. 한마디로 4K와 8K VR 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이용하기에 전혀 문제없다.
여기에 초저지연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기존에는 수십 밀리세컨드(1㎳는 1000분의 1초)의 지연 시간을 지녔지만, 5G가 되면 지연 시간이 1㎳의 수준에 불과해진다. 지연 시간은 명령을 쉽게 이야기하면 내렸을 때 반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령 시속 100㎞로 달리는 자율주행차 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클라우드에서 긴급 제동 명령을 내리면, 4G 환경에선 차가 1m 이상 주행한 후 명령을 수신하게 된다. 반면에 5G 환경에선 불과 3㎝도 진행하기 전에 정지 신호를 수신한다. 무선인데, 마치 유선처럼 반응한다.
VR 단말에서도 1㎳ 지연 속도는 중요하다. 무선임에도 VR 단말이 클라우드에 유선으로 연결한 듯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콘텐츠를 돌리는 건 높은 컴퓨팅 파워를 지닌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면 된다는 말이다. PC모니터에 성능을 요하지 않듯이 5G에서 VR 단말도 고성능 PC와 같은 성능을 갖출 필요가 없다.
이미 모바일 단말 성능이 상당 수준으로 올라섰고, 5G 초저지연으로 클라우드 파워를 활용한다면 4K, 8K 콘텐츠를 아주 매끄럽게 즐길 수 있다. 무선으로 말이다.
■ VR 완성의 시작은 5G
과거보다 VR를 쉽게 접할 수 있긴 하지만 관련 시장 성장은 더디다. 기술 한계가 명확한 탓이다. 하지만 5G 시대가 되면 4K를 넘어 8K의 실감 나는 콘텐츠를 무선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가상인지 진짜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차원이 다른 현실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멀미나 피로감을 느끼는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5G를 준비하는 국내 이동통신사 모두 VR에 열심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선보인 '소셜 VR'를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스포츠·공연 등 콘텐츠 시청을 넘어 가상공간에서 서류를 보고 논의할 수 있는 협업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KT 또한 일체형 HMD를 활용한 개인형 VR 서비스 '기가 라이브 TV' 콘텐츠를 다양화하며, 직접 VR 테마파크 '브라이트(VRIGHT)'를 운영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3월 5G 스마트폰 출시와 더불어 아예 VR 콘텐츠 전용 앱을 내놓을 계획이다.
물론 해상도 하나만으로 VR의 모든 한계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명한 화면은 가상현실을 더욱 현실처럼 보이게 해주는 데 기본이다. 그동안 VR는 주목도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VR는 계속 진화해 왔고, 지금은 5G 킬러 콘텐츠로 거론되고 있다. 5G를 품은 VR는 한 단계 진화한 가상현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VR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