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국내 반도체 장비·소재 존재감 '미미'…클러스터로 해묵은 과제 털어내야

우리나라 반도체 초격차 전략은 후방산업을 책임지는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가 동반 성장해야 달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묵은 핵심 소재·장비 국산화 및 자립화에 더해 글로벌화까지 이뤄져야 진정한 반도체 산업 초격차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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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메모리 반도체 대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반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 등을 생산하는 국내 후방산업 상황은 열악하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최첨단 장비들은 외국 기업이 싹쓸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장비 시장은 확장일로다. 국제반도체재료장비협회(SEMI) 자료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장비 시장은 2018년 170억달러, 2019년 130억달러, 2020년 180억달러로 줄곧 1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관련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생산 라인 장비 대부분은 외산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기판에 집적회로를 그려 전기적 특성을 지니게 하는 전공정 과정 장비는 해외 업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장비 국산화율은 20% 이내, 재료 국산화율은 절반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홍상진 명지대 교수는 “공정별, 분야별로 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내 장비 기업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글로벌 장비 업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리서치, KLA-텐코, 네덜란드 ASML, 일본 TEL 등 5대 회사가 반도체 장비 핵심 기업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가 이들 장비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기술력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ASML은 웨이퍼에 빛을 쏘는 방식으로 회로를 그리는 노광 장비, 특히 차세대 기술인 극자외선(EUV) 분야에서 독점을 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회사별 ASML 장비 구매 비율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불화크립톤(KrF), 불화아르곤(ArF) 물질 등을 활용한 기존 노광 장비는 ASML과 함께 일본 캐논, 니콘이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다.

노광, 계측 장비 외에 대부분 전 공정 장비 생산에 관여하는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2017년 매출은 100억달러, 증착, 식각 장비를 생산하는 램리서치는 매출은 78억달러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와 매출 규모와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5~10배 정도 차이가 나고 관련 기업이 이제야 태동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전·후방 사업의 비대칭 생태계가 형성된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 도입이 '속도전' 양상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국내 대기업이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할 때, 이른 가동을 위해 외산 장비를 들여왔던 점이 오늘날까지 부작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국내 장비 업체 사이에 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야 할 때가 다가오면서 첨단 장비를 활용해야 하는데, 클러스터 내 국내 장비 업체와 수월하게 교류를 하면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재성 극동대학교 교수는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소자 업체가 국내 장비 업체 성장 위해 테스트 기회를 마련하는 등 협력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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