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다. 혁명이 두려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필니츠 선언' 으로 도발한다. 혁명정부는 선전포고로 답한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이 1792년 7월 19일 프랑스 국경을 넘는다. 8월 23일 롱위, 9월 2일엔 베르됭이 함락된다. 9월 20일 발미 벌판에 6만5000명이 마주본 채 도열한다.
발미전투는 혁명군의 포 사격으로 시작됐다. 맹렬한 포격을 뚫고 유럽 최강인 프로이센 보병이 진격한다.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동요한다. 백병전이라면 시민으로 구성된 혁명군이 당해낼 도리가 없다. 이때 프랑스 진영에서 라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진다. 프랑스 보병의 장총이 격발되고, 연합군의 대열이 무너진다.
앨런 라이올 아마존 부사장에게 공급망 관리는 피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 피에르 메르시에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때만 해도 공급망 관리는 기업 생존 문제였다. 2015년 매장 1700개의 패스트푸드 체인이 식중독으로 주가 42%를 까먹는다. 이 사건으로 치폴틀레 멕시칸 그릴은 1993년 설립된 이후 쌓아 온 명성과 3년치 주가 상승분을 온전히 반납한다. 공급망 어딘가를 타고 들어온 이콜리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을 살펴본 후 두 사람이 내린 결과는 의외였다. 공급망 관리에 혁신이 필요하고,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래 구매, 인보이스 처리, 매입매출 회계, 지불 업무는 물론 수요 예측 및 자산관리와 심지어 생산라인 개보수 계획까지 인공지능(AI) 몫이 된다. 물론 배송은 드론이나 자율주행차가 한다.
블록체인 기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트코인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미래에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추적해서 전체 공급망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에 제격이다. 실상 월마트는 중국 현지에서의 제조부터 미국 매장에서의 판매까지 적용하고 있다. 에버레저는 수백만개 다이아몬드 개별 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모니터할 수 있다.
자원 개발에 '채굴-운송'이라는 공식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제 대부분 사람 몫이 아니다. 파이프라인 관리는 드론, 심해 채유시설 관리는 로봇 몫이다. 이미 광 산업은 로봇, 사물인터넷(IoT), 데이터 관리가 핵심인 산업이 됐다. 리오틴토는 호주 필바라 광산에서 이 방식으로 생산성을 무려 15% 높였다.
놀랍게도 발미에서 두 군대는 창검을 직접 교환하지 않았다. 대포와 장총만으로 대부분의 전투를 벌였다. 그런 탓인지 6만명 넘게 동원된 이날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다 합쳐 500명 남짓이었다.
백병전이 빠진 발미전투처럼 기업 경영도 달라지고 있는지 모른다. 좋든 아니든 AI, 블록체인, IoT 같은 기술은 이미 기업 경영으로 스며들고 있다. AI 없이는 글로벌 기업조차 자신이 생산하는 데이터 가운데 겨우 1%만 경영에 사용하고 있다.
발미전투에 참전한 괴테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 '1792년 9월 20일을 기점으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쓴다.
공교롭게 라이올와 메르시에가 함께 쓴 기고문 제목은 '공급망관리의 종말'이었다. 물론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겠지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