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오픈 목표로 이중투자 논란·소비자 혼란 예고...중기벤처부·서울시도 부정적
한국은행이 시중은행과 제2 제로페이 출시를 예고했다.
중소벤처기업부·서울시에 이어 관이 개입한 비슷한 개념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다. 금융권 이중 투자 논란과 소비자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부나 서울시 등에서는 부정적 입장이어서 정부기관 간 갈등 양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 산하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이하 금정추)가 QR코드 기반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상반기 내에 개시한다.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16개 은행이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데 합의했다.
문제는 금정추가 추진할 간편결제 서비스가 중소기업벤처부와 서울시 등이 오픈한 제로페이가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기반의 직불 집적회로(IC) 결제 방식으로 QR코드 등을 지원하고 은행 계좌 방식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점에서 제로페이와 동일하다.
금정추는 지난해 12월 19일 '은행예금계좌 기반 모바일 직불 서비스'를 QR 및 바코드 기반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앱) 형태로 선보이는 안건을 의결했다.
제로페이 서비스가 이미 나온 상황에서 유사한 서비스 상용화를 결의한 것이다.
금정추는 전체 시중은행과 유관기관 등 금융권 협의체로 한은 금융결제국이 사무국을 맡고 있다.
이번에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산업은행 등 16개 은행 디지털 담당 임원 대상으로 서면 의견을 구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찬성이 나와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한은 측은 밝혔다.
상반기 오픈을 목표로 한다. 제로페이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명칭이 '○○페이'로 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모바일 현금IC 카드'는 결제뿐만 아니라 가맹점에서 현금 입·출금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4만원어치 상품을 구입한 후 5만원을 결제하면 1만원을 거슬러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거스름돈이 생기면 이를 가맹점에 내고 그만큼 앱에 저장할 수 있다. 앞으로 CD/ATM에 앱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현금을 인출하는 서비스도 구현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제로페이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이 주도하는 또 다른 사업은 은행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로페이 관리유지 비용을 내야 하는 은행권이 금정추 회원사로서 '모바일 현금IC카드' 사업에도 재원을 출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기존 현금카드 망을 활용하는 데다 금융결제원과 추진하는 만큼 제로페이와 유사한 서비스에 그칠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됐다.
금정추 참여 금융사 관계자는 “이중 투자 문제와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 일부 은행에서 제기됐지만 각 은행의 디지털 고위 임원들이 모두 찬성을 했다”면서 “정부 소상공인 정책 참여에 은행권도 이렇게 동참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로페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기부와 서울시 등도 과거 한은과 이 문제에 대해 일부 협의를 진행했지만 흐지부지됐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로페이 상용화 이전에 한은 주도의 모바일 직불카드 상용화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면서 “그때도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의결까지 됐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중기부 관계자도 “또 다른 모바일 직불페이가 나오면 시장 혼란과 이중 투자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중 투자 문제 방지를 위해 조속히 대안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근주 제로페이 추진단장은 “간편결제 산업과 소비자 혼선이 있다면 즉각 이 문제를 해소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연동 문제나 중복 투자가 되지 않도록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서비스는 2017년 7월부터 논의된 사안”이라면서 “'모바일화 현금IC카드'는 스마트폰으로 CD/ATM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ATM기가 없는 곳에서도 현금을 인출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권이 먼저 이 사업 추진을 제의했다고 덧붙였다.
<표>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 현황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