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49>레온티예프 강박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레온티예프. 1905년 독일 뮌헨 태생의 러시아계 미국 경제학자다. 미국 경제를 수십개 부문으로 나누고 상호 관계를 일종의 표, 즉 산업연관표를 만든 공로로 1973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청출어람이청어람이라고나 할까. 이보다 앞선 1970년에 이 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이 그의 제자다. 1987년 수상자 로버트 솔로, 2002년 버넌 스미스, 2005년 토머스 셸링까지 그의 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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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학의 이름을 딴 법칙이 없을 리 없다. 그 가운데 '레온티예프 효용 함수'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소비자가 두 재화를 소비할 때 효용은 적은 재화 양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신발 오른짝이 열 쪽이고 왼짝이 한 쪽이면 오른짝 한 쪽, 왼짝 한 쪽 가진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신발 한 켤레의 쓸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석학의 유산이라고 해야 할까. 기업 제품 개발에도 비슷한 강박 관념이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스테판 톰키와 '신제품 개발 원칙' 저자 도널드 라이너트슨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다.

두 사람이 발견한, 기업이 신봉하는 여섯 가지 잘못된 철칙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바로 다다익선의 오류였다. 기능이 늘어나면 만족도 커진다는 것이다. 가전제품 리모컨을 한번 보자. 비싼 제품일수록 뭔지 모를 기능의 버튼들로 가득 채워 뒀다. 자동차 계기판은 비행기 조종석처럼 보일수록 그럴싸하다고 믿는다. 뭔가 대단한 기술이 들어 있는 듯 보이는 게 목적이다.

그 반대 극단도 있다. 덴마크 뱅앤올룹슨은 복잡한 이퀄라이저와 조작 버튼 대신 전원을 켜는 것으로 최적의 음질을 들려주는 게 목표였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즐비하게 나열하는 대신 최고 성능 제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오히려 숨겨 놓는다. 자신 있다는 으스댐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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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꼭 제품 개발뿐만이 아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다다익선은 흔한 선택이다. 혹시 다른 원칙은 없을까.

톰키와 라이너트슨은 두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첫 단계는 문제를 낱낱이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소비 상황을 따져서 필요 기능을 찾아낸다. 두 번째 단계는 정반대다. 무엇을 빼고 제거할지를 찾아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것을 천재와 범재 차이라고 말한다. “문제란 대개 처음엔 단순해 보이죠. 차츰 문제의 복잡성을 깨닫습니다. 이런 저런 해법을 찾아내죠.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멈춘다는 것입니다. 애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고상한 해법을 찾아낼 때까지 문제의 본질을 따지죠.”

한 자동차 광고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한 사람이 뚜벅뚜벅 차로 걸어온다. 본네트를 용접한다. 그러더니 차 문을 열고 올라탄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운전해서 가 버린다. 집집마다 공구로 가득 채운 차고를 갖춘 미국에서 '기름만 넣고 그냥 타세요'라고 말한다.

실상 이 '레온티예프 강박'은 생각보다 흔하다. 오래된 고장 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누군가처럼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극복하기도 비켜서기도 쉽지 않다. 잡스는 '진정 위대한 사람만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잡스급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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