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힐티에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전동 공구 매출은 꾸준했지만 정작 고객이 만족하고 있는지는 자신 없었다. 고객을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주 고객인 건축 시공업자에게 장비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큰 문제다. 공사를 할 수 없고, 그러면 수입도 없다. 문제는 장비가 있다고 돈 버는 것은 아니란 점이었다.
최고의 공구와 장비를 파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을 생각하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힐티는 장비를 파는 대신 적시에 최소 비용으로 최적 장비를 공급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꾼다. 이로써 힐티엔 서비스 기업이란 호칭이 덧붙여졌고, 새로운 수익 공식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이노사이트 회장이자 '백색 공간' 저자이기도 한 마크 존슨에게 벤처캐피털이 종종 조언을 구해 오곤 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존슨은 우버는 물론 슬랙, 핀트레스트, 블루 에이프런 같은 기업을 살펴보았다. 모두 정보기술(IT) 기업이었고, 기업 가치는 10억달러를 넘어선 유니콘이었다. 상식이 말하는 공통의 성공 요인은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었다.
존슨이 찾은 해답은 달랐다. 실리콘밸리도, 디지털 플랫폼도, 최첨단 기술도 아니었다. 그가 찾은 퍼즐의 가운데 조각은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공통점은 네 가지였다. 첫째 새로운 고객 가치 제안이다. 힐티는 더 나은 공구를 더 싸게 파는 대신 '당신이 원하는 공구를 당신이 원할 때 불편함도 재고의 부담도 없이' 서비스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렇게 힐티는 기회 공간을 찾아냈다.
둘째 새로운 수익 공식이다. 고객에게 새 가치를 전달하면서 수익 창조 공식도 찾아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비용 혁신이라면 목표 고객 가치를 달성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제품 차별화라면 가격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셋째 자원 혁신, 넷째 공정 혁신이다. 목표한 고객 가치 제안 실현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자원은 바뀌기 마련이다. 사람, 기술, 제품, 시설, 장비, 유통, 서비스망, 브랜드 등 차원에서 점검해 보라 한다. 힐티는 제조공장과 유통망을 직접 판매 고객 서비스망, IT플랫폼으로 바꿨다. 타타자동차는 나노를 만들기 위해 부품의 85%를 아웃소싱하고, 공급업체 수는 60% 줄였다. 조립업체로 협력 망을 구축했다.
최근 광고 가운데 '빌리면 렌털, 직수관까지 교체받으면…'이라고 시작되는 것이 있다. 이 기업 홈페이지에는 '가전제품을 전문가가 관리해서 고객 삶에 안전과 편리를 더한다'고 자신의 목표를 설명한다. 놀랍게도 힐티는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고객에게 이런 약속을 했다.
존슨 교수가 말하는 백색 공간도 이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근본부터 다른 방식으로 기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제 힐티의 조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구멍이지 전동드릴이 아니잖아요.”
한 가지만 더. 놀랍게도 서울의 4분의 1 크기인 입헌군주제 국가 리히텐슈타인의 인구가 고작 6000명인 도시 샨에 이런 창의 기업 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