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충격, 과열, 과전류 등에 따른 발화 위험성이 높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스마트폰이나 전기차보다 몇 십배 내지는 수 백배 큰 용량을 갖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큰 불이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남은 배터리 열량이 완전 소진될 때까지 진화가 어렵고 전소가 돼야 끝나는 특징이 있어 경제적 손실도 크다. 다양한 부품과 모듈이 조합된 복잡한 시스템인 만큼 화재 원인을 특정하기도 힘들다.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종합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셀 결함이 ESS 화재의 직접 원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피크저감용, 주파수조정용 ESS보다 신재생에너지 연계형 ESS에 화재가 집중됐고, 삼성SDI와 LG화학 등 셀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과 연계된 ESS의 경우 발전입력이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갑자기 대전류, 대전압이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전기적 충격으로 인한 과충전이 배터리 셀 단락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 전력제어시스템(PMS)이나 전력변환장치(PCS)에 오류가 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배터리 제조사가 ESS 화재 사고 이후 SOC(충전잔량) 상한을 90%대에서 70% 낮추는 조치를 취한 것도 이러한 과충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스템 하자나 복합적인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배터리 셀 내에서 최소한의 방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ESS용 배터리에 전기차보다도 높은 신뢰성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관련한 인증 체계 전반도 손 볼 필요가 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ESS용 배터리는 적절한 에너지 밀도를 가진 고신뢰성 셀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갑자기 큰 입력이 들어오고 다른 부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견딜 수 있는 배터리 셀이 필요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인증 조건도 새로 마련해 극한 상황에서 견디는 ESS 배터리 전용 특수 시험성적서를 발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체 시스템 보완도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연계형 ESS를 설계할 때 배터리뿐만 아니라 PMS, PC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각 부품에 대한 안전규격도 국가표준으로 지정해야 한다.
상당수 ESS 화재가 설치 과정에서 부주의나 시공 불량으로 일어나기도 하는 만큼 설치 규정도 강화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ESS 보급이 확산되고 국산 배터리가 해외에 ESS용으로 수출되는 경우도 많은데 국내에서 유독 화재가 빈발한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설비 관리 규정에 빈틈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미국의 경우 ESS 설치와 유지보수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고 건물 내 ESS 설치에 대해서도 여러 권고사항이 있다.
일단 화재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 매뉴얼이 정립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특수화재로 분류하고 현장 소방사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최기영 한빛안전기술단 연구소장은 “ESS 화재 시 현재 물 외에 화재 진압 방법이 마땅치는 않은 만큼 화재 진압이나 복구 절차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제품 안전관리는 물론 소방과 시설 분야 전략을 모두 담은 ESS 안전관리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화재 위험성이 없는 레독스흐름전지나 공기아연전지 등 차세대 전지 상용화와 맞물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제도 개선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