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44>감정 흐름 지도

2008년 4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소문은 시장에 파다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도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고객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판매는 35%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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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즈음 현대자동차는 광고 하나를 시작한다. 거미줄 같은 미국 고속도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한 광고 배경 위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일 당신이 내년에 수입을 잃는다면 돌려주세요. 당신의 신용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걸 약속합니다.”

미국 텍사스A&M대 교수이자 '메이요 클리닉에서 배우는 경영혁신' 저자인 레너드 베리 교수에게는 오래된 연구 주제가 하나 있었다. 소비자 스트레스와 악감정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품질과 가치 인식, 구매 결정, 추천 의도 모두 이것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기업은 이런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어디까지가 '고감도 비즈니스'일까. 만일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베리 교수에게 몇 가지 조언이 있다.

첫째 고객의 스트레스를 확인하라.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에게 친숙하지 않다면, 품질 보장이 어렵다면, 실패의 피해가 돌이킬 수 없다면, 잘못의 원인을 알 수 없다면, 일련의 과정을 장기간 겪거나 반복해야 한다면 고객이 져야 하는 스트레스 무게는 커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고객의 경험을 기록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감정 흐름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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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둘째 고객의 악감정에 조기 대응하라. 당연한 말 같지만 실상 간단한 일이 아니다. 미국 예일대 인문의학저널에는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건강검진 결과를 묻지 말라'는 스토리가 나온 적이 있다. 암이라고 한들 어차피 몇 주는 담당 의사조차 만나기 어렵다고 할 테니 크리스마스만 망칠 거라는 얘기다. 지독히 흔한 문제지만 백업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거의 없다.

셋째 악감정의 원인을 찾으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만든 나비효과는 얼마 후 자동차 산업을 덮친다. 문제는 미래 불안감이었다. 당장은 문제없지만 직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보면 황당한 슈퍼볼 광고 후에 현대자동차가 되돌려 받은 차는 고작 350대뿐이었다. 결국 원인은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인 셈이었고, 실현 확률은 낮은 셈이었다.

넷째 가치를 최우선하라. 메이요 클리닉에서 고객 담당자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인식으로 보았다. 질문 문항 가운데에는 '만일 다른 직원이 고객을 무례하게 대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은 필수다.

2009년 2월 1일 슈퍼볼에 처음 띄운 이 '현대 어슈어런스'란 광고를 아카데미 시상식에 아홉 번을 더 내보낸다. 광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계약서를 받아들기 마련이죠. 그게 리스든 융자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 당신의 자동차회사는 어디 있나요. 현대자동차는 당신과 함께합니다.” 현대차의 판매량은 2009년 8%, 2010년에는 24% 늘어났다.

암 병동이란 극단 조건에서 고객을 만난 한 마케팅 대가의 조언은 간단하다. 고객이 경험해야 할 감정의 흐름을 고려, 고객 제안을 디자인해 보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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