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벼랑끝 카드업계, '무이자할부·만원의 서프라이즈' 사라진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6일 발표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은 애초 취지와 달리 소상공인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우대수수료율 구간을 30억원까지 확대하고, 연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계획이 과연 소상공인에게 실익이 있는지도 판단이 엇갈린다.

급격한 수수료 개편으로 카드사가 소비자 혜택을 대거 축소할 것으로 보여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대형 마트 무이자 할부와 놀이공원 할인혜택 등 대표 부가서비스가 줄줄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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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례 카드 수수료 인하, 기울어진 운동장

이번 카드수수료 종합개편의 핵심은 우대수수료율 대상 가맹점을 대폭 확대했다는 점이다. 전체 가맹점의 93%에 달한다. 3년 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카드 수수료를 조정한다는 대원칙 자체가 이번에도 무너졌다.

금융위는 신용카드는 연매출 5억~10억원 이하 구간은 1.4%, 10억~30억원 이하 구간은 1.6%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체크카드는 우대수수료율을 5억~10억 이하는 1.1%, 10억~30억원 이하는 1.3%로 각각 적용했다.

카드수수료 인하 혜택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귀속되도록 해 경영부담 경감을 통한 일자리 확대 및 소득증가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3년 마다 실질적인 적격비용 산정이라는 기본 원칙 자체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포퓰리즘 정책에 카드사만 벼랑 끝으로 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섰다고 자조한다. 여기에 IT기반 간편 결제 사업자가 카드사의 전통 플랫폼을 뒤흔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한마디로 카드사는 도산 위기로 내몰렸다.

이미 카드업계에선 구조조정이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달 창사 이래 처음 희망퇴직 접수를 시작했다. 올해 1월엔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희망퇴직을 실시해 223명을 내보냈다.

당정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라고 주문한 것에 대해 카드 업계는 고객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정부 정책이 되레 소비 시장을 위축시켜 가맹점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앞서 국회는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고쳐 정부가 3년마다 적격비용을 산정하고 정책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영세·중소가맹점은 적격비용 미만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토록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84%로 확대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93%까지 확대했다. 원칙은 무너지고, 소상공인 혜택이라는 여론을 교묘히 활용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카드 적격비용 재산정 원칙이 무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68%이던 우대수수료 비율을 2013년 7월 73%로 조정됐다. 또 2015년 1월 75%로 확대된 지 1년 만에 78%로 대상을 넓혔다.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3년 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우대수수료율을 정하는 것에는 업계 모두 이견이 없다”며 “정치적 이슈에 따라 카드사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현 정부 기조는 적격비용 재산정이란 기준을 무시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서울과 울릉도는 '임대료·매출이 다른데….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번 정부 시책에 대해 “서울과 울릉도 건물 임대료가 다르고 매출 차이가 나는데 이를 획일적으로 묶어 카드수수료 절감이라는 선언적 대책으로 밀어 붙이는 건 시장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지역·업종별 차이를 조사하고 카드수수료 정책을 결정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번 수수료율 인하 혜택은 5억원 이상 차상위 가맹점에 돌아갔다. 영세·중소가맹점은 인하 대상에서 빠졌다. 이미 수수료 부담이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인하 대상에 연매출 500억원 이하 초대형 가맹점까지 포함한 점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금융위는 우선 연매출 5억∼10억원 구간 가맹점 평균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2.05%에서 1.4%로, 체크카드 수수료율은 1.56%에서 1.1%로 각각 낮아진다. 연매출 5억원을 넘어 영세·중소가맹점 혜택이 제외됐던 편의점, 음식점, 슈퍼마켓 등이다. 금융위는 편의점은 가맹점당 약 214만원, 음식점은 가맹점당 약 288만원, 골목상권은 가맹점당 약 279만~322만원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연매출 5억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은 수수료 인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훈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그간 카드 수수료 인하 조치가 매출규모가 작은 영세·중소 가맹점에 집중됐고,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에 따라 실질적으로 카드 수수료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연매출 30억~500억원 이하 대형 및 초대형 가맹점도 수수료 인하 혜택에 포함된다. 연매출 30억~100억원 이하 가맹점은 종전 2.20%에서 1.90%로, 연매출 100~500억원 이하 가맹점은 약 2.17%에서 1.95%로 각각 2% 이내로 수수료율이 인하된다. 체크카드는 30억~100억원 이하는 1.56%에서 1.1%로, 100억~500억원 이하는 1.60%에서 1.45%로 각각 수수료 인하에 나서기로 했다.

◇차라리 정부가 '카드 공사' 만들어 운영해야

카드업계는 정부가 카드 수수료까지 정해주는 국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중국처럼 차라리 정부 돈으로 운영하는 카드공사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으로 카드업계는 연간 8000억원의 순이익이 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로 줄어든 마진을 연회비 인상이나 부가서비스 축소 등으로 만회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 상한이 2007년 이전 4.5%에서 2018년 0.8~2.3%까지 낮아진 상황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더 인하하기 위해서는 자금조달비용을 구매자(카드회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연회비 인상이나 무이자할부·포인트 등 부가서비스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금융위는 내년도 '경쟁력 강화 테스크포스(TF)'에서 현행 3년인 부가서비스 의무 유지기간 축소도 논의하기로 했다. 포인트, 할인, 무이자할부 등 카드회원이 누리는 부가서비스가 회원 연회비의 7배 이상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신용카드 이용으로 받는 혜택과 비용의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해당 안이 적용되면 당장 내년부터 각종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무이자할부 등 혜택이 거의 사라질 수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수익이 급감하면 연회비 인상이나 부가서비스 축소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현재는 부가서비스 의무 유지기간이 있어 기존 상품 서비스는 축소할 수 없지만, 신규상품을 시작으로 소비자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