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항암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노벨상 수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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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의약바이오연구본부 책임연구원

남성 2명 중 1명, 여성 3명 중 1명은 일생을 통해 걸리게 되는 질병. 대한민국 사망률 1위인 질병. 지난 50년 동안 사망률이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한 몇 안 되는 주요 질병. 바로 암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암의 두려움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암 정복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곧 한계를 절감하게 됐다. 대부분의 환자에서 약물내성에 의한 암의 재 발현이 관찰된 것이다. 바로 이 때 '항암면역치료제' 라는 새로운 개념의 약물에 대한 임상결과가 2010년대 초반 발표됐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암의 완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대표적 예가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다. 9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2015년 항암면역치료제인 '키트루다'를 통해 뇌까지 전이된 흑색종이 완치돼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암세포는 몸속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특정 단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단백질은 면역세포의 면역관문 수용체와 결합해 면역세포 기능을 차단시킨다. 이런 방법으로 암세포는 몸속에서 면역세포 공격을 받지 않고 성장한다. 현재 우수한 효과를 보이는 면역치료제는 바로 이 면역관문 수용체를 억제하는 항체다. 이 항체를 통해 암세포의 면역세포에 대한 회피기전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기존 항암제들은 약물이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내성발현 부작용이 나타난 데 반해, 면역치료제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내성발현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항암면역치료제 개발의 이론 배경을 제시한 연구자 2명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의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일본 교토 대학의 혼조 다스쿠 교수는 면역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CTLA-4'와 'PD-1'이 면역관문수용체로서 면역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역할이 있음을 밝혔다. 또 이들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들어 세포에 투여한 결과 면역세포의 암 살상력이 현저히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본 연구를 바탕으로 10여년 동안 CTLA-4와 PD-1 항체개발이 이뤄졌고 그 결과 '여보이'와 '키트루다'가 탄생해 최근 뛰어난 임상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런 항암면역치료제에도 문제점은 있다. 면역치료제에 반응하는 환자는 전체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는데 아직 명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면역치료제는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한 대로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에 대한 면역세포의 공격을 유발해 크고 작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또 다른 면역관문수용체들에 대한 신약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면역항암제의 또 다른 형태인 면역세포치료제 개발 연구 중이다. 기존 면역관문 수용체 억제제는 항체를 이용하는 반면 면역 세포치료제는 신규 유전자 도입을 통해 몸속의 면역 세포 자체를 이용한다. 현재 혈액암에서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보이고 있어서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의 난제 중 하나인 암을 정복하기 위한 신약 개발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항암면역치료제 개발에 기여한 금번 노벨 생리의학상 업적도 연구자의 수많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삶에 획기적 영향을 끼친 신약 치료제는 결국 연구개발의 산물이다. 항암면역치료제의 부작용 개선을 위한 단서도 의약〃바이오분야 연구를 통해 면역세포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이루어질 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의약〃바이오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점을 인식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R&D 투자를 더 확대하고, 과학자들도 자신의 연구로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 투자와 연구자의 꾸준한 노력,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라는 삼각편대가 굳건히 자리 잡을 때, 암 정복도 머지않을 것이다.

박지훈 의약바이오연구본부 책임연구원 chpark@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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