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시장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인공지능(AI) 변호사가 혁신 바람을 일으킨다. 법률 스타트업도 잇따라 등장, 개혁을 부추긴다. 법원 역시 변화를 가속화한다. 법원 데이터를 개방, 신기술과 법률 서비스 간 접목에 나섰다. 새로운 기회도 열렸다. 블록체인과 같은 신산업이 변호사 도움을 원한다.
조직 내부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청년변호사는 '취업 한파'에 시달린다. 과당경쟁으로 생존 자체를 걱정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혼란의 시기 변호사를 하나로 뭉치게 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를 만나 변화에 맞설 혜안과 계획을 들어봤다.
◇인공지능
-인공지능(AI)이 법률시장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법원, 변호사 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가 바꿔놓을 법률 시장 미래를 점쳐본다면.
▲AI는 법률 서비스 질을 향상시킨다. 유사 판례 검색과 같은 단순 업무에 드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남는 시간을 활용, 법률 판단에 집중하면 된다. 의뢰인과 교감, 소통 시간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AI가 단시간 내 변호사, 법원 역할을 대체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판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AI 시대를 맞아 일선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는 어떤 준비를 하는지.
▲대한변협과 산하단체는 관련 주제 교육과 세미나를 연다. 규제 혁신도 도모한다. 변호사가 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특히 대한변협은 직속으로 '스타트업규제혁신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 규제 혁신은 물론 투자 및 효율적 분쟁 해결에 나서기 위해서다. 제도 개선도 추진 중이다. AI 객체의 법적 책임 문제를 두고 소속 변호사 모두가 고민하고 있다.
-변호사와 비(非)변호사 간 동업 허용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법률과 기술을 결합한 '리걸테크' 산업 육성 일환인데,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견해는.
▲법률 시장과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변호사와 동업도 일부 허용하는 게 맞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대등한 지위에서 시너지를 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데이터
-법원이 판례를 포함한 데이터 공개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관련 스타트업 성장도 가로막혀 있다.
▲최근 변화가 생겼다. 대법원이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모든 판결서를 검색·열람할 수 있는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에 착수했다. 환영할 일이다.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는 판결문 공개를 지속 주장해 왔다. 판결문 공개가 사법 절차 투명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
데이터 공개에 따라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헌법상 공개재판주의를 실질화하는 것은 물론 전관예우 관행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대한변협 요구에 화답한 대법원 결정이 사법 불신 해소에 더해 법률 스타트업 성장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대법원이 2024년까지 '스마트법원 4.0'이라는 이름으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국민에게 양질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돕는 것이 협회 역할이다. 물론 법원의 새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단순 법률사무 분야에서는 불안감을 표출할 수 있다. AI가 자리 잡으려면 이 같은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블록체인
-대한변협 소속 스타트업규제혁신특별위원회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위원회 내부에 블록체인 테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배경과 역할, 계획은 무엇인가.
▲대한변협은 블록체인 TF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스타트업규제혁신특별위원회 산하가 아닌 대한변협 직속 조직으로 구성했다.
정부는 암호화폐와 관련한 자금세탁 가이드라인 외 어떠한 제도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기존 법률에 대한 공식적 해석도 내놓지 않은 채 부정적 입장만을 견지한다. 정당한 사업자조차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악의적 사업자로부터 피해를 본 사람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업자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도 본거지를 싱가포르 등 외부로 이전했다. 사업으로 인한 이익과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국내 블록체인 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
향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TF와 실무 협의체를 꾸려 관련 법안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블록체인에 관심 있는 기관과도 협력,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
-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대한변협 입장은.
▲ICO로 인해 블록체인 업체는 발전할 수 있다. 반면 부적절한 ICO 탓에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할 수도 있다.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한 법률안이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변협 블록체인 TF는 ICO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설계 중이다. 거래소가 금융기관에 준하는 수준으로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스타트업
-대한변협이 스타트업 대상 법률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성장 단계인 스타트업이 변호사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다.
▲스타트업 자체로 큰 수익이 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사례를 봐야 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도 함께 큰다.
스타트업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법률 자문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최근 법무법인 세움, 비트 등 여러 로펌이 스타트업을 초기 단계부터 지원, 동반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일단 규제가 너무 많다. 불필요한 법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사문화된 법도 정리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정부 입법 방식으로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 독소 조항 제거해야 한다.
면허, 허가, 신고 제도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기득권에 억매여선 앞으론 나갈 수 없다. 하루 빨리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
◇성과·계획
-회장으로 일하며 거둔 최고 성과를 꼽자면. 향후 핵심 추진 과제는.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임기 동안 최선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지금까지 25개가 이뤄졌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 입법발의 실현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제조물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최초로 도입, 약자인 대다수 소비자 권익을 높인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제조물에서 모든 불법 행위로 범위를 넓히겠다. 물적 손해뿐 아니라 인적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지게 하겠다.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을 막지 못했다. 이 일로 양질 세무·법률 서비스를 받을 국민 권리가 원천적으로 박탈됐다. 세무사법을 재개정, 국민 권익을 수호하는 데 매진하겠다.
-평소 신념과 꿈은.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목표한 바를 이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젊은 후배 변호사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법률시장 여건이 녹록지 않아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다. 청년 변호사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모든 힘과 능력을 바치겠다.
대담=김원석 성장기업부장
정리=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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