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거리 핵전력조약 폐기"…냉전 시대 재현되나

Photo Imag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파기를 20일(현지시간) 공식화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말기 제동이 걸려 지금까지 억제돼온 군비경쟁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따랐다. 러시아는 “매우 위험스러운 조치로서, 국제사회의 규탄을 부를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11·6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원유세를 위해 방문한 네바다 주 엘코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스크바(러시아 정부)가 합의를 위반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반 사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INF와 관련 “우리는 협정을 폐기하고 탈퇴하려고 한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해당 무기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왔다”면서 “미국은 러시아가 핵 합의를 위반하고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무기를 만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출국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내주 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INF 파기 계획을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수주 내에 조약 파기에 공식 서명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를 포함해 4개국을 순방하는 볼턴 보좌관은 첫 도착지인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국가 안보 수석 격)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다.

INF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가 500∼5천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냉전 시대 군비경쟁을 종식한 문서로 꼽힌다.

이 조약에 따라 양국은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692기를 폐기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시리즈를 개발하고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면서 미·러의 INF 위반 공방이 가열됐다.

미국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SSC-8(9M729 시스템) 순항미사일 실전 배치가 INF 위반이라며 비난했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을 통해 북대서양조양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어 유럽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미국이 INF를 실제로 탈퇴하면 러시아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유럽 전역에서 이 조약이 처음에 서명되던 1980년대와 비슷한 군비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이날 타스 통신에 “협박을 통해 국제 안보와 핵안보, 전략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문제에서 러시아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미국의) 지속적 시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약 탈퇴는 안보와 안정성에 헌신하고 현 군비통제 체제 강화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심각한 비난을 불러일으킬 아주 위험한 행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략적 안정성 분야의 핵심 협정 2개 참여국 가운데 하나인 핵강국(미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하려 하고 있다”면서 “현실화하면 그 결과는 진실로 재앙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