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대행의 공통점은 원천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남의 상품을 똑같이 구현하거나 독자 기술을 갖춘 곳의 지시를 받아 보조 임무를 수행하는 의미다. 산업에서 복제 또는 대행을 주업으로 하는 기업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바이오 산업에서도 복제와 대행 이미지는 타 산업과 비슷하다.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이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업체를 신약 개발 기술이 없거나 합성의약품 복제약인 제네릭 생산 기업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제네릭은 안정된 화학물을 표준화된 형태로 재가공한다. 개발과 생산이 다소 쉽다. 바이오시밀러는 살아있는 미생물에서 단백질을 뽑아내고 정제과정을 거친다.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을 갖추는 것도 어렵다. 국내 대부분 제약사가 제네릭을 생산하지만 바이오시밀러 개발 업체는 소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의약품 수출 실적 1위가 바이오시밀러일 정도로 성장 가능성은 짙다.
임상시험수탁기업(CRO)은 신약, 의료기기 개발에 필수인 임상시험을 '대행'한다.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대상자를 모집한다. 임상시험 수행과 결과 분석까지 책임진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리는 임상시험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CRO 역량이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임상시험을 수행했는지, 최적 결과 도출을 위한 임상시험 대상자를 어떻게 선발할지, 시시각각 변하는 시험과정에 변수를 어떻게 최소화할지 등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 CRO 산업은 변방에 가깝다. 2016년 기준 3700억원대 규모를 형성했지만 외산 기업이 매출 70%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임상시험을 우선하는 제약업계 전략이 반영됐다. 그러나 정부 무관심이 궁극의 원인이다. 신약 강국 실현을 위해 CRO 산업을 육성하겠다지만 연간 투자하는 예산은 6억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 경쟁력은 54개국 가운데 26위다. 해마다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반면에 꿈은 크다. 세계 10대 신약 강국, 혁신 의료기기 생산 국가 등을 기치로 내건다. 원천 기술 확보에 몰두해서 새로운 성장 가치를 '복제'나 '대행'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해선 안 된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