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6>혁신 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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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기술혁신 이론에는 잘 알려진 몇 가지 S곡선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술 진보 곡선이다. 간단히 말해서 시간과 노력에 따른 기술 진보 정도는 대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S자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연구개발(R&D) 초기에는 성능이 지지부진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기술이 축적되면 성능은 빠르게 향상된다. 그러나 기술 한계에 가까워지면 속도는 다시 느려진다. 잘 알려진 '무어의 법칙'도 일종의 S곡선이다.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18개월에 2배씩 늘어난다면 곡선 기울기는 점점 가팔라지지만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한다.

이런 기술 진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방향 가늠조차 어렵다. 기업 역량 문제만도 아니다. 굴지의 혁신 기업도 실패한 일이다. 여기 한 가지 사례가 있다.

우리가 보통 CD라 부르는 콤팩트디스크는 1981년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일본 소니와 네덜란드 필립스 기술이 표준이다. 표준해설서 표지가 붉은색이어서 이른바 '레드북 오디오 포맷'으로 불린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니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출시된 이후 오디오 시장의 대세가 됐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차세대 오디오 포맷 얘기가 나온다. 경쟁자는 두 곳. CD 표준을 선점 당해 절치부심하던 도시바-히타치 컨소시엄이 'DVD 오디오'란 새 포맷을 제안한다. 소니와 필립스도 '슈퍼오디오CD'를 들고 나온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당신은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갖고 있냐고. 대부분 없다고 답한다.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정답은 MP3의 출현이다.

DVD오디오와 슈퍼오디오CD는 더 선명한 음질을 제공한다고 했다. CD의 대역폭이 20㎑까지지만 새 포맷은 50㎑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사람의 가청 대역이 대개 20㎑이고, 그 이상은 동물이나 구분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MP3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더 진보된 기술이지만 소비자에게 가치를 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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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기업이 함정에 빠진 이유는 단순하다. 토머스 에디슨이 처음 목소리를 녹음해 재생한 이후 오디오 기술의 진보란 고음질과 동의어였다. 더 선명한 음질을 들려줄 수 있다면 경쟁에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MP3가 주는 편리함은 놀라운 것이었다. 적은 용량으로 음악을 보관할 수 있었고, 심지어 초창기 인터넷 환경에서도 이메일로 주고받거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소니는 역사상 최고 혁신 제품으로 불리는 워크맨을 '창조'했으면서도 '휴대용'과 '편리함'이라는 혁신의 디멘션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슈퍼오디오CD 대신 MP3를 착안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혁신 시소라는 것이 있다. 한쪽이 무거워질수록 다른 끝은 들리게 마련이다. 주저앉은 곳에 과거와 현재의 혁신이 있었다면 그 반대쪽은 새 혁신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늘 향해 치솟은 시소의 반대편이 태양의 눈부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어느 가을날 늦은 오후의 경험처럼. 찾아내긴 쉽지 않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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