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PC제조업체 A사는 최근 일반 판매 대리점에서 파는 인텔 중앙처리장치(CPU) 물량까지 사고 있다. 올해 7월부터 도매로 나오는 인텔 CPU 물량 부족에 시달리다 내린 고육책이다. A사는 분기 단위로 확보해 둔 물량이 없는 탓에 수요가 생길 때마다 인텔 공인 대리점에 물량을 주문해야 했다. 최근 CPU 도매가까지 상승했지만 물량만 확보한다면 가격 상승 압박은 그대로 견디기로 했다.
#중견 PC 제조업체 B사는 회사 대표가 인텔 CPU 물량 확보를 위해 직접 나섰다. 고정적으로 확보해 둔 분기 물량은 이달이면 소진한다. 당장 다음달 제품 물량을 맞추기가 빠듯하다. 이 회사는 내년 1·2분기 PC 시장 성수기와 올해 4분기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을 앞두고 인텔 CPU 물량이 동이 날까 전전긍긍이다. 대표가 여러 공급처를 둘러보고 물량 확보를 타진한다.
국내 PC 제조업체가 PC용 인텔 CPU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부 중소업체는 올해 7월부터 인텔 CPU 물량을 확보하는데 애를 먹었다. 지난달부터는 더 많은 국내 PC 제조업체가 물량을 바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인텔 또한 PC용 CPU 물량이 부족하다고 공식 시인하면서 PC 제조사 불안감은 더 커진 상태다.
국내 PC 제조업체 불안감은 제조업체 규모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 매출이 몇백억원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은 인텔 CPU 공급 장기화시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이미 도매가 폭등을 경험하며 비싼 가격을 주고 인텔 CPU를 사고 있다. 공급량을 맞추지 못해 일반 판매 대리점에서 CPU 물품을 수급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수익성 악화도 우려된다. 일부 기업은 인텔 CPU 도매가가 두달 사이에 30% 정도 올랐지만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
A사 관계자는 “CPU (도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제품 가격을 아직 올리지 않았다”며 “공공기관에 제품을 많이 공급하는데, 공공조달 제품은 정해진 가격을 줄이는 건 가능해도 높이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중견기업은 분기별 인텔 CPU 물량은 확보해 놓았다. 이 때문에 3분기까지는 제품 공급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당장 다가오는 4분기부터 인텔 CPU 물량을 확보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맞춰서 글로벌 PC 제조사에게 CPU 공급량이 쏠릴 것을 우려한다.
한 중견 PC 제조업체 관계자는 “10월까지는 인텔 CPU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당장 11월이 걱정이다”며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이 시작되면 글로벌 PC 제조사에게 물량이 집중 공급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중견 PC 제조업체는 주로 공공기관에 대규모로 제품을 공급한다. 이들 업체가 주로 활용하는 CPU는 인텔 6세대 스카이레이크 코어i5 제품군으로 출시 3년이 지났다. 당장 CPU 물량이 부족해진 인텔이 가장 최신 프로세서인 8세대 커피레이크나 7세대 카비레이크를 공급 우선 순위에 둘 것으로 보인다.
중견 PC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인텔 CPU 공급이 부족하면 인텔이 최신 CPU 위주로 제품을 공급할 것은 분명하다”며 “스카이레이크 물량은 더 달릴 것이고 당장 4분기 공공기관 물량이 동이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조립 PC시장도 인텔 CPU 가격 폭등으로 인해 시장이 요동치면서 시장 상황을 불안하게 만든다.
다나와에 따르면 인텔 8세대 코어i5 제품군 평균 구매가는 7월 첫째주 23만3530원에서 36만4050원으로 가격이 55.8% 뛰었다. 8세대 코어i3·코어i7 또한 가격이 50% 가까이 올랐다. 펜티엄·셀러론 등 보급형 인텔 CPU까지 이례적인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AMD 라이젠 시리즈 가격이 몇천원 수준 인상폭을 보인 것과는 대조된다.
통상 조립PC는 완제품에 비해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대신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가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조립PC 가격보다 미리 물량을 확보해 가격이 고정된 완제품 PC 가격이 더 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내 PC 업체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방안이 없다. AMD 프로세서 제품을 갖춘 중견기업 C사는 AMD CPU 적용 비율을 높이는 것을 대책으로 고심한다. 그러나 당장 인텔 CPU와 부품 생태계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AMD CPU 적용 비율을 단기간내 높이기는 쉽지 않다. AMD CPU 적용 경험이 없는 다른 PC 제조사도 선뜻 AMD CPU를 대안으로 삼지 못한다.
C사 관계자는 “인텔 CPU 공급이 부족하면 대안은 AMD인데 AMD CPU도 호환하는 메인보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당장 공공기관 쪽 물량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PC 제조업체 관계자도 “국내 PC 완제품 제조사는 AMD CPU를 적용한 경험이 없어 안정적 성능을 끌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AMD CPU는 과거 발열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특히 공공기관·기업에서 선호도가 높지 않은 점도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은 대표와 고위임원이 나서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마저 신통찮다.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인텔 정책 변화를 바라보고만 있는 기업도 많다. 이들은 CPU 공급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텔이 직접 나서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이다.
중견 PC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텔 정책이 가장 중요한데 인텔에서 명확한 답이 없어 답답하다”며 “PC 제조사 입장에서는 현재 인텔 정책 변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표> 인텔 CPU 구매가 추이
자료: 다나와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