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한류(韓流, K-Culture)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미국·일본·유럽 대중문화를 모방했던 국내 대중문화는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국내 영화·방송 등을 비롯해 음악·패션·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한류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한류는 단순한 애국심 때문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력에서도 동등한 수준까지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방면에서 세계 우위를 점할 정도로 대단한 입지를 가진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한류분위기를 최고로 치는 것도 좋지만, 지속적인 한류 신드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 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엔터테인&'에서는 한류분야 가운데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화산업을 집중적으로 분석, 지속적인 한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본다.
◇수준급 국산 실사영화, 국산 3D 애니메이션은?

8월22일자 기획 (숫자로 보는 1000만 영화! 쌍천만 배우!)에서 다룬 국내 박스오피스 관객 기록에서 보면 총 22편의 1000만 영화 가운데 실사영화는 '아바타'를 제외하고 대부분 국산 실사영화가 최상위권을 형성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외화인 '겨울왕국'외에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비단 기술력 문제만이 아니다. 인기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를 보면, 국산 영화에 쓰이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사 영화에 쓰이는 영상기술은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를 감안하면 국산 3D 애니메이션의 위상은 기술력과 무관하게 실사 영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2011년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산 3D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의 성공사례로 부각되곤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동일한 기술수준을 갖춘 다양한 작품이 등장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일각이 주장하듯 국산 애니메이션 흥행과 기술력 발전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원작 동화의 스토리텔링이 큰 영향을 미쳤던 사례로, 국산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야 함을 보여준다.
◇글로벌 애니 트렌드 무시한 일본, 따라간 한국
국산 실사영화는 대부분 미국 할리우드 대작 기법을 모방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소재와 정서를 반영해 독특하면서도 수준 높은 작품을 배출했다. 반면 국산 애니메이션은 미국 디즈니가 아닌 일본을 표방한 경향이 짙다. 일례로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 시리즈는 다양한 아류작 등장과 함께 국산 원작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이 때문에 당대 최고 수준인 일본 애니메이션과 동급 수준 트렌드를 자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쿵푸팬더' 시리즈를 만든 중국, 러시아 등 세계적인 트렌드가 3D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자국수요 중심으로 한 일본과 유사하게 움직이다보니, 다소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일련의 상황을 봤을 때 국내 애니메이션은 소위 '우물 안 개구리'격으로 사양화 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전환점은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들이 한류로 사랑받고 있는 상황에 비춰보면, 국산 3D 애니메이션도 한류 기반의 새로운 트렌드로 제시된다면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 2D·실사 VS 3D애니메이션, 차이는 '기술&노동집약'
특히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기술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발전가능성도 함께 드러난다. 3D 애니메이션은 3D 상영과는 다른 개념이다. 3D 상영 및 관람은 극장에서 별도의 디바이스를 착용한 채 입체감을 즐기는 방식이고, 3D 애니메이션은 그래픽 작업을 통해 작품 자체에 입체감을 부여한 작품을 의미한다.

이는 실사영화나 2D 애니메이션의 기법과는 다르다. 일례로 실사영화와 2D애니메이션 속에 보이는 물보라, 파도, 불꽃, 머리카락, 동물의 털, 수풀, 잔디, 모래바람 등 자연환경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찍거나, 대표적인 특징을 부각시키는 모습으로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반면 3D 애니메이션은 동일한 자연환경을 묘사하기 위해 고도의 기술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CG처럼 선명하게만 하면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을 해칠 수 있는 바, 경계선을 부드럽게 하는 음영처리(스푸마토 기법) 기술 등 작품 내 한 장면을 위해 1년 이상을 투자할 만큼의 기술과 노동력이 소요되곤 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여러 국가는 합작과 자체제작을 거듭하며 기술수준을 높이는 반면, 국내는 아직 관련분야에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앞서 말한 바 있듯, 국산 실사영화 내에 쓰이는 세계적 수준의 CG기술은 기법이나 영상제작 측면에서 3D애니메이션 활성화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보토스 패밀리'를 비롯한 다수 작품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형의 미세동작을 연속촬영, 한데 연결한 애니메이션)은 국산 3D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주 방향으로 제시된다.

두 방향은 자체적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면서도, 다각적인 영상 제작기술에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K애니 시대의 토대가 될 수 있다.
◇ 한류 꿈꾸는 국산 3D 애니메이션, 철저한 기획 속 스토리&기술개발 필요
앞서 보듯, 국산 3D 애니메이션은 아직 세계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쟁력 있는 기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해법에는 뭐가 있을까? 먼저 철저한 검증 속에서의 기획이 필요하다. 특히 3D애니메이션은 장면 하나에 실사영화나 2D애니메이션 이상의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한 만큼, 첫 기획부터 킬링 포인트를 명확히 세우는 기획이 필요하다.

스토리텔링 확립도 필요하다. 기술이 최상위권이라도 소재와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표 한류 콘텐츠인 영화와 드라마, 가요 등도 일정 수준 이상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경쟁력을 드러내는 것은 저마다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국산 3D 애니메이션에도 필요한 것이다.

요컨대 국산 3D 애니메이션 한류화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풍조의 탈피와 함께, 킬링포인트를 갖춘 명확한 기획과 스토리텔링 내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CG기술의 다변화를 접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볼 수 있다.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실사 단편영화에서도 좋은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 반면 3D 애니메이션은 기술수준이나 비용, 시간 등의 이유로 좀처럼 수작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한류의 다각화를 추진하는 지금, 국산 3D 애니메이션을 향한 공감대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