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의 新영업之道]<7>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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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갑질'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자주 접한다. 잊을 만하면 낯 뜨거운 이야기를 다루면서 키워드로 '갑질'을 내세운다. 도둑 뒤에'놈'을 붙이고 사기를 일삼거나 노름에 빠진 사람을 가리켜 '사기꾼' '노름꾼'이라고 하며 '꾼'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듯 '갑'에 아무렇지 않게 '질'을 붙인다. '갑의 행동' '갑의 행위'가 아닌 '갑질'이라고 한다.

영세 사업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 홈쇼핑 직원이 납품업체에 못된 짓을 행할 때, 규모가 다소 큰 기업이 힘없는 대리점에 재고를 떠안길 때, 회사 회장이 자기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욕을 퍼붓는 반인륜 행동을 할 때 언론은 '또 갑질'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을 뜨겁게 달군다.

'갑'의 어이없는 행동을 주제로 다루는 코미디 프로도 있었다.

'갑(甲)'과 '을(乙)'은 십간의 첫째와 둘째다. 십간의 처음인 '갑'이 음의 기운을 뚫고 나오는 양기의 시작이라면 '을'은 한 단계 더 펼쳐진 그다음 상태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순서로는 갑이 앞서지만 기의 세기는 을이 더 강하다.

계약서상에서 '갑'과 '을'은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으면서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주고받는 상호 필요한 계약 상대자다. 즉 서로 같은 크기의 필요와 가치를 주고받는 대등한 관계다.

그러나 거래 과정에서 갑은 우월한 입장이 되고 을은 갑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절실한 입장이 되어 때론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갑과 을은 동등한 거래 관계가 아닌 수직 계층이라는 상대 관계의 표현으로 변질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갑은 지위가 높거나 우월한 입장의 사람을 지칭하고, 지위가 낮고 힘없는 상대를 을로 지칭하는 이상한 현상이 고착됐다.

어찌되었건 이제'갑'과'을'은 상대적이고 대립적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동의하기 어렵고 옳지 않은 구분이지만 판매자의 상대편인 구매자와 재화를 매개체로 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을 갑으로 보고 회사나 조직 또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지위나 권한 측면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도 갑으로 칭할 수 있다.

누구나 갑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과장과 부장이 만나면 부장을 갑이라고 하겠지만 부장이 상무와 만나면 부장은 상무의 을이 되는 것이고, 상무도 사장을 만나면 다시 을이 된다.

맞지 않는 얘기지만 사회 통념상 그렇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영업상 카페 주인을 고객으로 만난다면 을이 되지만 카페에 손님으로 갔다면 갑이 된다. 상황,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맡은 업무가 영업인 사람도 시간을 전부 펼쳐 놓고 보면 10%도 안 되는 시간이 을로서의 삶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갑으로 지낸다. 물론 병(丙), 정(丁)의 시간도 있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갑의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 성숙된 국가를 만들고 국격을 높이는데 이보다 중요한 주제는 없다고 본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두가 흥분하지만 이내 잠잠해지고 이야깃거리로 떠돌다 잊어져 간다.

모두가 갑이지만 갑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괴물로 생각하고 실랄하게 비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누구도 다루지 않았고, 기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된 적은 없었다.

영업직원이나 서비스 종사자는 을로서 갖춰야 할 기본과 원칙을 지겹도록 듣고, 교육받고, 또 배운다. 그러나 을이 아무리 노력해도 갑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달라지겠는가. 영업하는 직원이 원칙을 지켜도 고객이 부당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고객이 부정을 일삼고 편법을 동원하는데 어떻게 을이 버틸 수 있겠는가.

어떤 을은 회사 문을 닫고 세상과 담을 쌓고, 어떤 을은 고약한 갑의 하수인이 되어 연명하는 것이다.

잘못된 갑은 을을 망치고, 푸른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된 사회를 만드는 주범이다.

답은 갑에게 있다.

이제까지 영업의 새로운 길을 위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층이 달라져야 하는 것을 다뤘다. 앞으로는 영업의 본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또 다른 핵심 주제인 갑을 다루고자 한다. 영업 활동의 대상인 고객 이야기이다. 갑으로 표현되는 고객이 바른 생각과 공정성을 유지한다면 을은 '고객가치 극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을을 인격으로 존중하되 을의 옳지 않은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갑, 거래의 본질을 투명하게 유지하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는 갑, 진실 되고 성숙된 갑은 부정·비리·불합리의 빌미를 허용치 않는다. 진정한 고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업을 업(業)으로 하는 모든 을도 일을 떠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갑으로 살지만 을일 적에 한탄하던 갑의 행태를 똑같이 반복한다. 상대의 가치를 폄훼하고, 뭔가 바라고, 갑질을 하려 한다. 갑이 갑인 것을 모르고, 갑이 갑의 본분을 잊고 다른 갑만 보고 손가락질할 때 희망은 없다.

당당한 갑, 공정한 갑, 바른 갑은 깨끗한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시작이자 마무리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js.aquina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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