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식 디지털세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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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과세 원칙이다. 그런데 디지털 경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금 징수 단계에서 구멍이 생겼다. 과세권을 판단하는 고정사업장 기준이 기업경영 환경 변화를 못 쫓아간 결과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등장하면서 국가 간 징수 형평도 무너졌다. 글로벌 기업은 세율이 낮은 국가에 고정사업장을 두는 방식으로 절세(?)한다.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고정사업장 정의를 현실에 맞게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별 플랫폼 형태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고정사업장이라는 낡은 기준에 IT 기업을 억지로 끼워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럽연합(EU)이 칼을 빼들었다. 디지털세 논의에 불을 붙였다. 고정사업장 문제는 일단 제외했다. 순이익이 아닌 매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새 제도를 만든다. 세율과 시행 시기 윤곽은 이미 드러났다. 미국을 설득하는 작업이 남았다. 경제 논리를 적용한다. 디지털세가 신설되면 미국 기업 피해가 가장 크다. 미국이 좋아할 리 없다. 반대로 EU는 손해 볼 게 적다. 오히려 미국을 견제해 유럽 기반 IT 기업을 키워 낼 수 있다. EU가 디지털세 도입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그런데 미국에서 최근 디지털세를 인정하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미국은 1992년 과세권을 고정사업장 소재 과세 관청에 부여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세금을 부여해 왔다. 26년 만에 이 같은 흐름에 균열이 생겼다. 사우스다코타주는 온라인 쇼핑몰 웰페어에 매출 4.5%에 상당하는 디지털세를 내도록 했다. 웰페어는 사우스다코타주에 고정사업장이 없다며 납부를 거부, 소송전에 불을 지폈다. 워싱턴 연방대법원은 사우스다코타주 손을 들어 줬다. 법원은 “온라인 사업자는 덜 낸 세금만큼 물건을 싸게 판매, 오프라인 업체 이득을 빼앗아 갔다”면서 “공정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과세 대원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정사업장 기준만으로는 과세 형평을 실현할 수 없다는 인식에 힘이 실린다. 국내에서도 디지털세 논의가 시작됐다. 국익 관점에서 주판알만 퉁기는 수준이다. 진도를 빨리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다. 다른 어떤 나라 못지않게 디지털세 대상 기업이 많다. 과세 대원칙에 입각한 한국식 디지털세 설계도를 만드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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