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4>어느 리조트에서 생긴 일

급히 리조트를 떠나야 했다. 갑작스레 밀어닥친 해일로 바닷물이 로비 앞에서 출렁댔다. 체크아웃 데스크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카운터 직원이 당황하며 손짓했다. 신용카드 한도가 넘어 결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평소 쓰지 않는 카드가 한도를 넘다니. 다른 카드로 결제하고 차에 짐을 싣고서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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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소리만 날 뿐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다짜고짜 본인이 맞느냐고 묻는다. 한도를 넘는 사용 시도가 있어 확인 차 전화를 했다고 한다. 종종 상의에 지갑을 넣어 의자에 걸쳐 둔 채 회의를 다니곤 하니 그 사이 누군가 사용했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잘 쓰지 않는 카드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칼칼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기업 컨설팅사 가트너의 고객서비스 담당 매슈 딕슨과 캐런 프리먼에게는 매일 부딪치는 고충이 있었다. 주로 최고경영자(CEO)나 중견매니저 고객들이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로 계약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들의 새 선택은 대부분 경쟁 기업이었다.

두 사람은 그 사이 있은 상담전화 7만5000건을 들여다본다. 찾아낸 결론은 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고객 로열티는 최고 서비스가 아니라 문제 해결 여부에 좌우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찾아낸 문제는 간단했다. 첫째 고객 만족을 따지면서도 문제가 생긴 고객은 골칫거리로 여겼다. 고객은 좋은 서비스에 재구매로 보상하는 것보다 나쁜 서비스에 회심으로 복수하고 싶은 충동이 훨씬 강했다. 많은 기업은 엉뚱한 데 돈을 쓰고 있었고, 낭비되는 돈만큼 고객도 잃고 있었다. 둘째 기대를 넘는 감동 서비스가 성공 비결이란 믿음은 단지 마케터의 기대 섞인 상상일 뿐이었다. 조금 더 만족하게는 했지만 결론은 시간 낭비와 혼란, 거기다 이런저런 추가 비용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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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매뉴얼대로, 훈련받은 대로 응답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될 리 없다. 문제는 정작 고객의 다급한 상황을 외면하는 데 있었다.

딕슨과 프리먼은 고객 만족에서 두 가지 규칙을 제안한다. 첫째 고객 로열티는 쉽게 올라가지 않지만 떨어지기는 쉽다. 둘째 이에 따라서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서비스에 만족했는가'나 '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나요'가 아닐지 모른다. 바른 질문은 '당신의 불만 사항 처리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여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고객만족지수(CSAT)나 순추천고객지수(NPS) 대신 고객수고지수(CES)를 제안한다.

허리케인이 불어 닥친 한 리조트에서 생긴 일은 고객에게 큰 금액의 사용 내역부터 알리고, 고객이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것으로 정리될 일이었다. 애당초 자주 사용할 의도가 없었고, 씀씀이에 비해 한도를 너무 낮게 정한 탓에 벌어진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었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허리케인과 시동 꺼진 자동차를 눈앞에 둔 고객과 만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건이 됐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 기업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지. 항상 고객 감동을 말하지만 '무슨 일이에요'란 질문엔 더없이 옹색하지는 않은지. 요즘 뜸한 오랜 고객이 있다면 오늘 한 번 챙겨 보면 어떨까. 참고로 딕슨과 프리먼의 칼럼 제목은 '고객 로열티는 기쁨을 선사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였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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