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산업은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로 변화하며 도약했다. 모바일 게임으로 시장이 재편된 이후에는 확률형 아이템에 많이 기댔다. 그 결과 한 달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까지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는 이용자도 생겼다.
업계는 이들을 '고래'라고 부르며 우대했다. 콘텐츠 허들을 넣어 고래가 다른 이들 위에 설 수 있게 했다. 게임 수명을 늘리기 위해 그라인딩(반복 행위)을 강제하기도 했다. 좋은 아이템·캐릭터는 0.0001% 수준 확률로 획득하게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슬롯머신 잭팟을 터트릴 확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도한 결제 금액이 문제 되자 업계가 내놓은 해결책은 자정이었다. 자율 규제를 시행, 확률을 공개하게 했다. 공개하지 않으면 미준수 게임 명단을 공개했다. 한 차례 강화도 했다. 그러나 게이머는 확률형 아이템 구성 비율보다 확률 설정이 중요한데도 그건 쏙 빼놨다. 게임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원인이 됐다.
이재홍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최근 확률형 아이템을 '과하다'고 표현했다. 게임 업계가 기대한 규제 완화와 다른 발언이었다. 불만이 나돌았고, 우려 시선을 보냈다. 업계는 현재 자율 규제도 업체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확률형 아이템 매출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업계이니 당연한 주장이다.
특정 영역에서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 완화만 주장하기 이전에 게임 이용자들이 어떤 불만을 품었는지 들어줬으면 좋겠다. 왜 이용자들이 '성형외과 동기'처럼 비슷한 게임과 확률형 아이템에 지쳐 갔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확률형 아이템을 염두에 둔 콘텐츠를 짜기보다 게임사로서 장인정신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멋진 콘텐츠와 경험을 선사해 줬으면 좋겠다.
개발자들은 “꿈꿔 온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미국으로 가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실력 있고 작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너티독, 산타모니카스튜디오, 블리자드 등을 보고 떠난다.
국내 게임사는 규제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왜 개발자들이 떠나는지, 이용자들이 불만을 표하는지 알아야 한다. 개발자들을 게임 업계로 이끈 게임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