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ICT코리아]<9>실체없는 '스마트시티', 비전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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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가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붙는 단어 '스마트시티'. 전국 어디를 가나 스마트시티가 넘쳐난다. 버스도착 안내서비스만 제공돼도 스마트시티라는 이름이 붙는다. 스마트시티 범람으로 '스마트시티'라는 이름이 주는 가치가 크지 않다.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에 관심이 떨어지는 이유다. 정부가 세계 최고 도시를 만든다고 해도 실체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관심을 끌어 모으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스마트시티 정책이 처한 현실이다. 정부는 스마트시티 역시 플랫폼으로 구축하겠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이 수많은 모바일 콘텐츠를 품어 안은 플랫폼이 됐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시민이 만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서비스 모델을 창출하고, 이것이 다시 도시민의 안전·편리를 증진시키는 '플랫폼' 형태가 정부가 생각하는 스마트시티의 모델이다. 스마트시티라고 하면 버스안내·CCTV 등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플랫폼'이라는 모호한 단어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기본 구상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지난 7월 정부 발표 후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세종의 공유자동차 기반 도시 제안에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부산 구상에 대해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 관계자가 “스마트시티가 왜 뜨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지만 묘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첨단 기술을 실생활에 도입하는 플랫폼·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핵심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스마트시티 성공에 따라 ICT 산업은 물론 첨단 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제도·아이디어·예산 엇박자

문재인 정부의 스마트시티 정책은 크게 세 가지 구도로 추진된다. 백지상태에서 국가 주도로 세계 최초의 모든 기술이 총망라된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는 국가시범도시가 첫 번째다. 정부는 세종 5-1지구와 부산에코델타시티를 스마트시티로 선정하고 지난 7월 기본구상을 발표했다. 연말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년 설계와 착공을 거쳐 2022년 입주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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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5-1 생활권에 구축되는 스마트시티의 모빌리티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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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코델타시티에 구축되는 국가시범도시의 스마트 정수 기술

이와 함께, 기존 스마트시티를 고도화하고 도시재생과 스마트시티를 접목시킨 스마트재생 사업도 추진한다.

문재인 정부 '스마트시티' 정책의 성패는 국가시범도시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가주도 시범도시를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차가 크다는 것이다.

국가시범도시 사업은 미래 도시 서비스를 시험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그러면서도 일반 아파트처럼 시민이 거액을 들여 분양받아 입주하는 실제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기도 어렵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적용하자니 입주민을 확보하는 게 난제다. 자발적으로 시험 상태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지만 막연한 기대만으로 입주민을 끌어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 투자에 기대자니 규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자율주행자동차와 드론 등 일부 첨단 기술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뒀으나 아직 개념이 없는 미래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일본은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신기술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상태다.

정책 방향부터 엇박자의 시작이다. 정부가 주도해 백지상태에서 스마트시티를 구축하겠다면서도 민주적, 시민참여적인 형태 모델을 제안했다. 정부 주도 모델이지만 입주민의 주택 구입과 기업 투자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R&D 수준의 이상적인 도시를 지향하지만 실제 시민이 주택을 구입해 생활하는 도시를 세워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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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MP가 지난 7월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기본구상을 발표하는 모습

◇스마트시티 비전과 로드맵 제시해야

정부는 연말 국가시범도시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7월 발표한 기본구상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쳐 수정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 중이다. 아직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스마트시티의 그림을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마트시티는 하나의 서비스가 아니라 서비스를 구현하는 플랫폼”이라면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그 파급력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스마트시티 플랫폼의 파급력을 미리 보여주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만큼 정부가 스마트시티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구현가능한 스마트시티와 서비스, 미래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로드맵도 보여줘야 한다. 이들이 선행돼야 시민·기업 참여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 과학기술인은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가 있는데, 대통령이 주목한 스마트시티를 5년 안에 완성한다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면서 “기술 발전에 따른 궁극적인 목표와 실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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