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정보기술(IT) 투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문재인 케어 성공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 재정 효율성과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전자의무기록(EMR) 고도화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법제도 개선과 데이터 전담기구 설립, IT 투자 인센티브 제공이 제기됐다.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2회 국회바이오경제포럼에서는 병원, 학계, 기업에서 정부 의료 IT투자를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데이터 산업 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하지만, 뒷받침할 제도·재정 지원은 열악하다. 의료IT를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병원을 유지·관리하는 전산 인프라를 넘어 정부 보건의료 정책을 수행할 핵심 인프라로 고려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만성질환 관리,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등은 IT 기반으로 정책 효율성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의료 질, 비용 효율성,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지만 정부 투자도 부족한데다 노력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의료IT 투자로 보건의료 수준과 산업 성장을 이끌었다. 2009년 오바마 정부는 '미국 회복 및 재투자법(ARRA)'으로 병원에 첨단 EMR 구축 운영비용을 지원한다. 대규모 재원을 투입해 병원 정보화를 구현하고 환자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IT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병원은 인프라 구축 부담을 덜었다. 빅데이터 체계까지 마련돼 정밀의료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EMR 보급률이 90%에 이른다. 시스템 호환성은 8%에 불과하다. 의료정보 표준화가 안 돼 환자 불편은 물론 빅데이터 활용 엄두를 못 낸다. 자체 EMR 고도화, 빅데이터 체계 마련에 투자를 고려하지만 여력이 안 된다. 낮은 수가로 수익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 IT 투자에 따른 정부 재정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 제도·재정 투자가 요구된다. EMR 고도화로 빅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플랫폼을 구축해 병원, 기업, 연구기관이 모인 개방형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민감 정보인 보건의료 데이터 관리·활용을 위한 전담기관 마련 목소리도 나왔다.
최수진 OCI 바이오사업본부장은 “데이터 분석 사업은 보건의료뿐 아니라 전 산업 영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분산형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 등으로 상급종합병원에 쏠린 연구, 진료 수요를 지방 의료기관까지 넓히고 의료수준 상향평준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기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보건복지부 내에서도 데이터를 활용하는 부서는 보험, 산업, 복지 등 다양해 목적과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체계적 활용이 어렵다”면서 “정보 민감성을 고려할 때 안전한 관리와 활용을 위해 전담 거버넌스 구축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의료IT 투자 필요성을 공감했다. 투자와 빅데이터 활용 위한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선다. 양성일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 4개 기관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라면서 “7월 보건의료빅데이터 정책심의위원회를 발족하고 내년에는 데이터 활용 입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