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특허, 상표, 디자인 분야에서 미국, EU, 일본, 중국과 함께 세계를 대표하는 지식재산 강국 반열에 올랐다. 이달부터는 이들 선진 5개국 특허청(IP5)이 특허협력조약(PCT) 출원 국제조사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협력 심사를 시작했다. IP5는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는 UN 상임이사국 위상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번에 시작한 PCT 국제특허출원 협력심사에서 한국어가 공용어로 채택됐다. 이로써 국제기구에 외국어 번역 없이 특허를 출원할 수 있게 됐다.
PCT는 동일한 발명으로 다수 국가에서 특허를 출원할 때 출원 비용과 절차 부담을 경감하고 각국 특허청의 중복 심사를 줄이기 위해 제정한 제도다. 어느 나라에라도 한번만 출원하면 해외에 출원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IP5는 전 세계 특허 출원의 80% 이상을 처리하는 국가 협의체다. 2007년 출범했다. IP5 특허청은 매년 기관장 회의를 진행한다. 이번에 시작한 협력심사는 지난 6월 14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시범사업으로 시행하기로 합의해 이루어졌다.
IP5 특허청은 2년 동안 시범운영해 본 후 지속성 여부 등 후속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 간 공동심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선도적 실험이다.
PCT 협력심사는 주심기관이 대상 건을 선정해 진행한다. 2년간 처리건수는 주심기관 100건, 부심기관 400건 등 기관 당 총 500건이다. 출원인이 주심기관 1개를 선택하면 국제조사비와 협력심사 신청서를 IP5나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 제출하면 된다.
주심기관은 다른 4개 청인 부심기관의 의견서를 참고해 국제조사보고서(ISR)를 작성해 출원인에게 송부한다. 주심기관의 최종안과 각 부심기관의 의견서는 대외 공개하기로 했다.
PCT 협력심사로 국내 기업들은 국제출원에 대해 각 국에서 이른 시기에 특허 가능 여부를 예측하고 동일한 심사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국내 기업의 PCT 국제출원은 2000년 1582건에서 지난해 1만5752건으로 증가했다.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수출형 기업과 원천기술로 세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기술 집약형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PCT 협력심사로 해외 다출원 기업은 자신의 PCT 국제출원에 대해 각 국에서 이른 시기에 특허 가능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PCT 협력심사는 단독으로 수행하는 기존 국제조사 서비스와 달리 IP5 특허청이 공동으로 국제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동일한 심사 결과를 얻게 된다.
국내 기업은 높은 품질의 국제조사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다. 또 해당 PCT 출원이 각 국에 진입해 그 특허여부를 결정하는 단계가 되면 각국 특허청이 국제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도 높다.
PCT 협력심사 신청으로 수수료는 물론 막대한 특허출원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PCT 협력심사를 신청하면 일반 국제조사와 동일하게 1개 주심기관 수수료만 납부해도 5개국 특허청 의견이 반영된 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다.
한국 특허청을 주심기관으로 신청하면 1218달러의 수수료만 지불해도 미국(2080달러), 일본(1465달러), 중국(335달러), 유럽(2207달러) 등 4개국 검토결과까지 함께 받아볼 수 있어 6081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IP5 협력심사를 통과하면 전 세계에서 수용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무리한 특허출원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특허실패로 인한 비용 손실도 줄일 수 있다.
최교숙 특허청 특허심사제도과 사무관은 “PCT 협력심사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국제특허를 확보하는 데 매우 편리한 제도가 될 것”이라면서 “첨예화되는 국제 경쟁 속에서 우리기업의 해외 지식재산권 획득을 돕기 위한 맞춤형 국제 특허심사협력 제도를 확대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지식재산권 세계화를 위한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특허청은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특허청과 지재권 분야 4차 산업혁명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특허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4차 산업혁명 신기술 관련 지재권 보호, 인공지능(AI) 기술의 특허행정 적용, 3D 디자인 출원 등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담았다. 이 내용은 양국 정상의 공동선언문에도 반영됐다.
같은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유라시아 특허청장 회담에서는 특허심사와 정보화 협력 방안을 논의한 끝에 연애에 특허심사하이웨이(PPH) 시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했다. 한·유라시아 PPH가 시행되면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등 독립국가연합(CIS) 8개국에서 특허를 보다 빠르게 등록할 수 있게 된다.
지난 3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제1차 한-ASEAN 특허청장회의에서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ASEAN 10개국 대표단과 지재권 분야 협력비전과 목표를 담은 협력각서에 서명했다.
협력각서에는 지재권 창출, 보호, 활용 및 사업화에 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ASEAN을 위한 지재권 교육과정 개발, 교육프로그램 제공, 지재권 상업화 등 한국의 노하우 전수 등 구체적인 협력 내용도 담았다. 중장기 ASEAN 지재권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한-ASEAN 발명센터도 건립하기로 했다.
대전=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