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로부터 공식 라이선스(인증)를 받은 우수 기업이 중기벤처기업부로부터 '투자 금지' 기업으로 분류돼 파문이 일고 있다.
수개월 동안 준비해서 까다로운 정부 인증을 받았지만 또 다른 정부 주무 부처는 해당 기업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이른바 '스타트업 은산분리 규정'이 새 논란으로 떠올랐다. 부처 간 갈등이나 대립이 원인이 아니다. 부처 간 여러 법이 뒤엉키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총 세 가지 법이 이들 기업에 규정을 달리 적용, 우수 기업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16일 정부 부처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와 금융위로부터 해외 송금 라이선스를 획득한 20여개 기업이 중기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특법),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이하 창지법)에 의해 투자 제한 업종으로 묶였다.
지난해 7월 기재부와 금융위는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소액해외송금업체 규제 완화를 위해 이들 기업을 금융기관으로 편입시켰다.
정부가 요구하는 자격 요건을 갖춘 기업에 라이선스를 부여, 은행 등에 준하는 금융기관으로 지정해 준 것이다. 해외송금업체가 송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 개인정보 활용은 필수다. 그러나 종전 금융실명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에 기재부 등은 금융실명 거래 및 개인정보를 다뤄야 하는 소액해외송금업 특성을 고려했다. 금융기관에 소액해외송금업체를 포함시켜 은행처럼 개인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풀어 준 것이다. 다만 정부 라이선스를 받은 기업에 한했다. 현재까지 정부 심사를 통해 인증 받은 기업만 21곳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이 사업 확대를 위해 최근 벤처캐피털(VC) 등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진행하면서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중기부 소관 벤특법, 창지법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벤특법에는 VC 행위 제한 항목이 있다. 이에 따르면 금융실명법에 금융기관으로 분류된 기업은 어떠한 자금 조달도 받을 수 없다. 이른바 은산분리와 비슷한 규정이다. 벤특법 제4조4항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기관 주식을 취득하거나 소유하는 행위'는 VC 행위 제한에 포함된다. 창지법에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은 자금 조달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아이러니하게 벤특법과 창지법이 차용한 상위법이 금융실명법이다. 금융실명법에서 해외송금업체를 금융기관으로 편입시킨 개정 내용도 대통령령이다. 즉 규제 완화를 위해 정부가 풀어 준 법안이 되레 다른 하위법에서는 새 규제로 작용하는 모순이 발생했다.
정부로부터 인가 받은 한 기업 대표는 “최근 투자기관 세 곳과 자금 조달 계약만 남겨 둔 상황에서 벤특법 등에 의해 자금 지원을 할 수 없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중기부 등에 유권해석을 통해서라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라이선스를 받은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벤특법 규제안을 아직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인가를 받은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고, 최근 자금 조달에 착수한 기업이 상당수라는 점에서 이런 사례는 늘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법대로라면 기재부의 소액해외송금업을 취득한 핀테크 기업은 VC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부처마다 복잡하게 얽힌 벤처투자 관련 법령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기부도 입법 미비 상황을 인지하고 뒤늦게 제도 개선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타법 개정 과정에서 현행 법령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액해외송금업자에도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VC투자 현황 관련 법안 및 문제점(자료-본지 취합)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