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탠더드 엔지니어를 양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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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을 잘 만들고 만들어진 표준을 잘 지키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표준은 국가 사회를 구성하는 이해 관계자 간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표준을 만들고 지키는 수준은 그 국가의 사회·경제·기술·문화·정치 수준의 척도가 된다. 표준은 국가 사회 구성원 총체 삶의 양식, 의식, 질서를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기 때문이다.

4차 산업시대의 도래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에 걸맞은 수준의 표준을 잘 만들고 있을까.

1995년 WTO 체제에 의한 글로벌 시장이 열리면서 국가표준을 넘어선 국제표준이 세계 질서 규범이 되는 표준의 코페르니쿠스 전환이 일어났다. 표준의 속도는 글로벌 시장 변화 속도만큼이나 더 빠르고 민첩한 대응을 요구받게 됐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환경 변혁은 표준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품이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준이 먼저 시장 생태계를 창출하고, 이 생태계에 맞춰 제품이 뒤따르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만큼 표준 속도와 기술 수준이 중요하게 됐다.

표준의 이러한 변화와 특성을 이해한다할지라도 방대하고 복잡한 글로벌 시장의 변화속도에 맞춰 민첩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표준은 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표준체계를 확립하고 선도적으로 국가표준(KS)을 만들고 보급해 왔다. KS로 불리는 국가표준과 KS인증제도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초석이 됐고 'Made in Korea'의 제조강국, 품질한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원천과 정신이 되었다. 이는 KS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형 표준정책의 눈부신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빠르고 더 민첩한 대응을 요구하는 글로벌 표준혁명시대가 되면서 정부가 국가표준을 만들고 보급하는 지금까지의 국가표준시스템은 이제 혁신할 때가 되었다.

표준은 그럼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가 만들어야 한다. 안전, 보건, 환경 등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표준에 대한 정부 역할은 당연히 강화돼야 하지만 기술과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당사자가 표준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민간에 표준을 만들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표준을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만 표준은 공공재 특성을 띤다. 이 때문에 그동안 민간은 표준 생산자로서 표준에 적극 투자하고 개발하기보다 정부에 의존하는 소비자에 머물렀다. 그 결과 민간의 표준 역량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민간의 표준 역량을 함양하고 표준을 생산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표준을 만들고 보급하는 국가표준시스템을 민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 역사가 오래된 미국은 기술을 갖추고 있는 업종별 전문 단체가 단체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이 시장을 지배하는, 사실상 표준이 된다. 정부는 그 가운데 필요한 표준을 국가표준으로 채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있는 자가 표준을 신속하게 만들고, 그 표준을 통해 민첩하게 시장을 확보하는 선순환 표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표준개발협력기관(COSD) 70여개, 단체표준 제정 단체 140여개가 지정돼 있다. 이러한 표준 개발 전문 기관·단체·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국제표준으로 채택될 수 있는 우수한 표준을 만드는 글로벌 표준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정부는 필요한 국가표준을 채택하는 방식의 대전환을 통해 민간의 분출하는 역량을 표준 시장에 끌어들여야 한다.

둘째 실제로 표준을 개발하고 작성할 수 있는 스탠더드 엔지니어를 양성해야 한다. 표준은 KS A 0001 및 ISO/IEC Directive Part 2에 맞춰 작성하는 문서다. 그러므로 엔지니어라면 어느 정도의 교육 훈련으로 표준을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다. 소수의 표준 관련 전문가가 다양한 기술 전문 분야 표준을 작성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 기술자와 전문가가 표준을 직접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각 분야의 기술사 자격을 갖춘 전문가만 해도 5만명이 넘는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 전문가를 자기 분야의 표준을 작성하는 스탠더드 엔지니어로 양성한다면 우리나라의 민간 표준 역량은 눈부시게 향상될 것이다.

셋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미래 세대를 표준에 익숙한 글로벌 표준 인재로 양성해야 한다. 표준은 기술 내용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작성하는 일종의 테크니컬 라이팅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대에서부터 표준 작성 방법을 테크니컬 라이팅의 교양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면 미래 국가 표준 경쟁력의 인력 기반을 닦는 교육 혁신이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은 표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 이제 국제표준을 남보다 조금 빨리 뒤따르는 빠른 추격자에서 글로벌 표준의 속도를 앞서가는 선도자가 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표준의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정재익 서울벤처대학원대 외래교수 mindullej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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