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처했던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와 미국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를 각각 회생시킨 뒤 두 회사의 합병회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를 세계 7위의 자동차업체로 키운 세르지오 마르키온네 전 최고경영자(CEO)가 숨졌다. 향년 66세.
존 아넬리 FCA 회장은 성명을 내고 마르키온네 전 CEO가 스위스에서 별세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그는 사망 원인과 정확한 사망 날짜는 고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마르키온네 전 CEO는 지난달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스위스 취리히 대학병원에서 합병증으로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져,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며 끝내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사망 소식은 지난 21일 CEO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난 뒤 나흘 만에 전해진 것이다.
FCA는 당시 긴급 이사회를 열어 "마르키온네가 건강상 이유로 업무에 복귀할 수 없게 됐다"며 그의 뒤를 이을 신임 CEO로 영국 출신의 마크 맨리 지프 CEO를 선임했다.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태생으로 소년 시절 캐나다로 이주한 마르키온네 전 CEO는 캐나다의 대학에서 법학, 철학,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고, 변호사와 회계사의 길을 걷다가 2004년 피아트의 수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창업주인 잔니 아넬리 타계 직후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며 파산 위기에 몰린 피아트의 '구원투수'로 나서 생산 모델을 단순화하고, 공장 문을 닫는 등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비용 절감, 부채 감축에 성공해 피아트의 부활을 이끌었다.
2009년에는 파산한 미국 업체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회생시키는 능력을 발휘했고, 2014년 두 회사의 합병회사인 FCA를 출범시키며 FCA를 세계 7위 자동차업체로 키워냈다.
소문난 '워커홀릭'(일 중독자)으로 자동차업계 최장수 CEO로 군림한 그는 당초 내년 4월 CEO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
이탈리아 산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를 표했다.
그는 비용 절감을 위해선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경영자이자, 달변을 앞세워 노동조합과 애널리스트, 기자, 정치인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던 투사였으나, 재임 내내 정장 대신 스웨터와 점퍼를 고집한 실용적이고 소탈한 성품으로 정재계와 대중의 신망이 두터운 편이었다.
마르키온네가 재임 기간 슈퍼카업체 페라리, 농기구 전문 회사인 CNH를 FCA 그룹에서 성공적으로 분사하는 등 다방면에서 경영 수완을 발휘한 덕분에 지난 14년간 아넬리 가문이 경영하는 FCA와 산하 회사의 가치는 60억유로(약 8조원)에서 600억유로(약 80조원)로 10배가량 뛴 것으로 추산된다.
나흘 전 그의 후임자로 지명된 맨리 신임 CEO는 공교롭게도 마르키온네가 타계한 이날 FCA의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것으로 FCA 수장으로 정식 데뷔했다. 2분기 순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나며, FCA의 주가는 이날 밀라노 증시에서 장중 10% 넘게 급락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