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
도원결의부터 제갈공명의 죽음까지, 딱딱하고 어렵기만 했던 법을 소설 ‘삼국지(三國志)’로 재해석한 ‘검사의 삼국지’가 출간돼 화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도원결의를 통해 법적인 효과를 받는 의형제가 될 수 있을까. 민법은 법정혈족이 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양을 통해 양자와 양부모 사이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형제자매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안타깝지만 유비와 관우, 장비는 법적으로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관우는 관평을 입양해 친족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죽기로 결의를 한 유비, 장비와는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상속권을 가질 수도 없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의 분신과도 같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없다. 도원결의까지 한 유비와 장비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없다니! 너무 분하지 않을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바로 유증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증은 죽음과 동시에 증여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친족 관계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다만, 관우가 죽기 전에 미리 의사표시를 해 놓았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적토마는 유비에게, 청룡언월도는 장비에게 주라.”라고 말이다.’-21쪽
‘그렇다면 18세가 되면 아무런 제한 없이 결혼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18세가 되었더라도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제808조). 민법상 19세가 되어야 성년이므로 18세인 경우에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초선은 여포와 혼사가 오갈 당시 16세, 만으로는 15세였다. 따라서 아버지인 왕윤이 아무리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유효하게 결혼할 수 없다. 민법의 눈으로 보면 초선과 여포는 어차피 결혼할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유비는 손권의 여동생인 손부인과 결혼했다. 당시 유비는 50세, 손부인은 17세였다. 손권의 어머니는 딸과 유비의 나이 차가 많지만, 유비의 성품이 좋다는 이유로 결혼을 승낙했다. 그렇지만 우리 민법상 적법하게 결혼하기 위해서는 손부인이 18세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70~71쪽
‘유비는 두 번째 찾아갔을 때 공명에게 예를 다해 편지를 남긴다. 그런데 공명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화가 날 수도 있다. 시골구석의 백면서생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공명에게 ‘가족들의 안위도 생각하라.’는 편지를 보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보자. 평소에 나와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사건건 시비가 붙어 여러 차례 다툼으로 유치장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상대방이 희죽 웃으며 “고향의 부모님은 잘 계시느냐.”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소름이 쫙 끼칠 것이다.
생면부지인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기에 무시했더니 갑자기 ‘가족들의 안위도 생각하라.’는 편지를 보냈다면 공명의 입장에서는 소름끼치는 무서운 일임에 틀림없다.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비가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면 그 자체로 협박죄(형법 제283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害惡을 고지한 것이기 때문이다.’-152쪽
수많은 고전들 중에서도 ‘삼국지’는 특별하다. 인지도나 실제 판매량에 있어 압도적이라 할 만하며,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책으로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연극, 만화 등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들이 매번 새로이 등장한다.
책 ‘검사의 삼국지’는 위대한 고전 ‘삼국지’를 대한민국의 법률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도원결의부터 공명의 죽음까지 ‘삼국지’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대한민국 법률에 적용하여 풀어내고 있다.
우리는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지만, 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삼국지’라는 친근한 고전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잘 알아야 할 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이에 더해 관련사건 및 실제 판례를 소개함으로써 한층 깊이가 있다.
나태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삼국지’ 속에서 찾아낸 문제는 결코 어제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과 내일의 문제다. 아니다. 오늘과 내일의 문제를 넘어서 오늘과 내일을 위한 해답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나 시인은 또 ‘삼국지’ 내에서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던 장면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법률이라는 잣대로 보면 ‘불법’이 된다. 저자는 왜 그러한지를 법률적 근거와 다양한 사례로 증명해 낸다. 감동적이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콩밥을 먹게 될 장면들로 수두룩한 ‘삼국지’는, 저자의 해법에 의해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선사하는 고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올바르게 삶을 이끌기 위해 가장 필요한 법률을 ‘삼국지’의 내용만큼이나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적었다.
나 시인은 끝으로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어떻게 하면 법률을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의 의도대로 ‘삼국지’ 처럼 재밌고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래서 감동이 있는, 더불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담아낸 책이 바로 ‘검사의 삼국지’다. 이 책이 수많은 독자들의 삶을 좀 더 행복한 곳을 이끌어 줄, 또 하나의 고전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저자 소개]
양중진
2000년 검사가 되어 서울, 부산, 광주, 고양, 남원에서 근무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법무담당관, 법무부 부대변인, 대전지검 공주지청장,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등을 거쳐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양중진 지음 | 티핑포인트 펴냄|332쪽|15,000원
전자신문인터넷 소성렬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