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와 파운드리 계약 맺고 'SiC 모스펫' 시제품 양산 준비
현대자동차가 독일 인피니언에 100% 의존해 온 전기차용 전력반도체를 독자 기술로 개발한다. 차세대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핵심인 전력반도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본 토요타는 이미 1990년대부터 전력반도체 기술을 확보, 1997년 1세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자동차부터 자체 개발 칩을 탑재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실리콘카바이드(SiC) 기반 전력반도체 양산 준비를 위해 최근 협력업체와 시제품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 현대차는 지난 2009년 중앙연구소 산하에 전력반도체 기술 연구팀을 만들어 전력반도체 설계 기술 개발, 특허 회피, 특허 출원, 등록 등 업무를 처리했다. 지난해 현대차 전력반도체 개발팀은 남양연구소 재료센터 산하로 이동, 사양이 100볼트(V) 100암페어(A)인 SiC 모스펫(MOSFET) 제품 설계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계약은 양산 타당성 검증을 위한 것이다.
현대차가 반도체를 독자 기술로 개발·생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계열사 현대오트론이 해외 반도체업체와 주문형 반도체를 공동 개발, 현대차에 공급한 사례는 있다.
업계에선 시제품 양산 테스트와 모듈 생산 등이 완료되면 해당 칩이 현대차가 추후 내놓을 전기차 내부 인버터 모듈 시스템에 탑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를 총 14종 출시할 계획이다. 다만 독자 전력반도체를 완성차에 탑재하는 시점은 변동이 있다. 현대차는 전력반도체 선도 업체 특허를 피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회피 기술을 설계에 담았다. 이 때문에 생산 제품 성능을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반도체 전문가는 “현재 현대차는 인피니언의 실리콘 기반 절연게이트양극형트랜지스터(IGBT) 전력반도체를 공급받아 아이오닉이나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 차량에 탑재해 오고 있다”면서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인피니언 기술력이 좋긴 하지만 표준형 제품이어서 설계 자유도가 떨어지는 것이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1200V 100A SiC 모스펫은 차량 내 배터리에서 나온 전력으로 전기 모터를 구동하는, 일종의 조종 유닛이다.
현대차 전략은 토요타 모델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토요타는 현재 일본 히로세 지역에 독자 전력반도체 생산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1세대 프리우스를 생산할 때부터 독자 개발하고 생산한 전력반도체를 탑재해 왔다. 세계 완성차 회사 가운데 반도체 설계 역량과 생산 공장을 보유한 회사는 토요타가 유일하다. 현대차는 생산 공장을 직접 보유하는 대신 역량을 갖춘 외부 파운드리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SiC 제품을 개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은 실리콘 기반 IGBT가 주로 쓰이지만 전력 변환 효율이 높은 SiC 모스펫으로 바꾸면 연비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토요타는 전력반도체를 SiC 기반으로 교체하면 연비가 최대 10% 향상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토요타는 오는 2019년께 SiC 전력반도체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도 이 같은 효율 향상 이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