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개월차의 신입사원이 PO(단위조직의 코디네이터)에게 날카롭게 반문한다. 과제를 놓고 팀원들간 끝장토론이 벌어진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국내 기업에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요즘 ING생명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ING생명은 지난 4월 국내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애자일(Agile) 조직을 도입했다.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소그룹의 'Squad(분대)'를 꾸려 업무에 대한 전 권한을 부여했다. 임원-부서장-중간 관리자-직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직급체계를 철폐하고 모든 업무를 직급 고하가 아니라 수평적 분위기 속에서 '고객 시각'에서만 판단하도록 했다.
정문국 ING생명 사장은 “보험업계 최초로 애자일 조직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100일쯤 지나 점검해 보니 직원들의 책임감과 몰입도가 크게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능에 따라 부서로 나뉘었던 조직이 업무 과제 중심으로 모이다 보니, 한 팀 내에서 집단 지성을 통해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의사결정 후 실행하며 실패해도 빠르게 새로운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보험회사 직원들이 마치 스타트업 직원처럼 일하는 것이다.
또 권한을 주고 실패가 용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의견 개진도 활발해졌다. 분기별로 성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보고 등의 절차는 사라졌고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 결과 중심으로 업무가 이루어진다.
정 사장은 “과거 2개월가량 걸리던 신상품 준비기간이 애자일 도입 이후 3~4주로 대폭 단축됐다”며 “상품개발 초기단계부터 언더라이팅·보험금심사 등 여러 유관 부서가 참여해 실시간 피드백을 진행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고객관점의 문제해결도 나타나고 있다. ING생명은 그간 FC채널 계약유지율 향상을 위해 전담팀까지 꾸렸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애자일 조직 개편으로 영업·운영·고객전략 등 부서 간 업무 융합이 일어났고 새로운 개선책 도출에 성공, 이를 시범 시행한 결과 FC채널의 4회차 계약유지율이 직전 3개월 대비 평균 2%포인트(P) 향상됐다.
정 사장은 “워라밸, 주52시간 근무제 등 달라진 근로 환경에서 애자일 방식은 훌륭한 대안”이라며 “일하는 방식을 바꾼 애자일 조직을 통해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고객중심으로 스스로 혁신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