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 "공 끝이 좋아"는 옛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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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신시내티 레즈에서 투수로 활약하는 마이클 로렌즌은 최근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경신했다. 투수인 그가 기록을 갈아치운 분야는 구속이 아닌 타구 속도. 지난달 8일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에서 5회 대타로 나선 시속 116.5마일(약 187.5km)짜리 좌전안타를 기록했다. 이는 타구 추적 시스템인 '스탯캐스트'가 메이저리그에 도입된 2015년 이후 리그 투수 타구 속도 중 가장 빠르다.

몇 년 전만해도 야구 중계에서 '타구 속도'를 언급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잘 맞은 타구엔 의례 “총알 같은 타구”라는 관용어구가 따랐다. 몇 년 새 타구속도는 타구의 질, 나아가 타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근거로 쓰인다.

뿐만 아니다. 투수가 던진 공의 회전수와 체공시간, 타자가 친 공의 발사각과 비거리 등 생소했던 데이터가 지금은 모두 선수 능력치를 판단하는 주요 정보로 활용된다. 로렌즌이 투수임에도 대타로 나설 수 있었던 이유도 평소 타구 속도에 대한 구단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다. 데이터로 선수 능력을 판단한다. 과거 단순히 3할 타자와 10승 투수로 선수의 가치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더욱 세분화한 통계로 선수를 들여다본다. 세이버매트릭스가 야구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이유다. 세이버매트릭스는 야구에 사회과학 게임 이론, 통계학을 도입해 과거 통계가 담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보완해 선수 가치를 판단하고 과학적으로 승률을 높이기 위해 고안됐다.

세이버매트릭스는 기술 발전과 함께 구단 운영의 핵심 영역이 됐다. 과거 “공 끝이 좋다”는 말로 투수를 평가했다면 지금은 공의 분당 회전수(RPM), 체공시간(FL), 초속과 종속의 차이 등 다양한 데이터로 투수의 경쟁력을 구분한다.

똑같이 3할을 치는 타자가 있다면 평균 타구 속도, 발사각, 비거리 등 세부 정보로 팀 색깔에 맞는 선수를 영입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투수로 자리 잡은 콜린 맥휴는 적절한 세이버매트릭스 분석이 선수 인생을 바꾼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맥휴는 2013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투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휴스턴은 스탯캐스트에 나타난 맥휴의 커브볼 회전수를 눈여겨보고 영입한 후 커브볼 비중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 후로 맥휴는 승승가도다. 올해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52승 36패, 방어율 3.89로 준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세이버매트릭스가 일대 전환을 맞은 것은 메이저리그 '트랙맨시스템' 도입과 궤를 같이 한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트랙맨은 미사일을 추적하는 군사용 레이더에 기술을 기반으로 타구추적 시스템을 개발했다. 트랙맨이 메이저리그 중계, 각 구단에 제공하는 데이터만 27가지에 이른다. 메이저리그는 이전 까지 투구 추적 시스템으로 광학 카메라 기반 스포트비전(PITCHf/x)을 사용했지만 트랙맨 시스템 적용 이후 한층 순도 높은 데이터를 제공했다.

트랙맨시스템 원리는 미사일 추적 레이더 기술과 같다. 레이더는 전파를 쏘아 물체에 닿은 뒤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레이더와 대상과의 거리를 측정한다. 각각의 발신기가 전파를 쏴 이를 집중시키는 위상배열 기술과 도플러 효과를 통해 타구의 위치, 속도를 파악한다. 파동을 만들어내는 물체 움직임에 따라 실제와 다른 값의 진동수와 파장이 관측되는 현상이 도플러 효과다. 타구에 전파를 보내어 반사되어 돌아왔을 때 진동수 차이를 이용해 속도를 파악한다.

선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는 미국 그래픽회사 카이론헤고가 만든 트래캡이 쓰인다. 두 대 카메라가 그라운드 위 모든 선수 움직임을 초당 25장씩 찍어 분석한다. 선수의 3차원 좌표를 인식한 뒤 계속 촬영하며 이전 사진과 비교해 이동한 거리와 속도를 파악한다. 타자가 친 영상에 서로 다른 야수 수비 장면을 넣고 누가 더 빠르게 타구를 쫓는지 비교할 수 있다.

기술 발전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나오는 데이터도 늘어나고 있다. 이를 활용해 누가 먼저 선수 잠재력을 파악하느냐가 구단 경영능력을 좌우한다. 언젠가는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야구 감독으로 부임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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